[쉼-息]/빈자의 양식

수라(修羅)

그러한 2012. 9. 21. 10:23

 

 

수라(修羅)

 

- 백 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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