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약무의 모친이 보내신 편지를 읽고

그러한 2012. 10. 23. 15:23

 

 

네가 가까이 있다면 (나는) 아무리 병들고 아파도 편안할 것이다.

나는 너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요, 너도 안심하고 나를 걱정하지 않을 것 아니냐.

둘 다 걱정하지 않으면 피차 편안해질 것이다.

편안한 곳이 바로 정적(靜寂)이 있는 곳이니, 왜 꼭 먼 곳으로 가서 정적을 찾으려느냐?

...

너는 도를 추구하는 정(情)을 생각하는데, 나는 세간의 정을 생각한다.

세간의 정을 통해서 바로 도를 추구하는 정을 얻는다.

 

지금 시국이 이런데, 네가 마음을 고요히 하는 수행을 하려고 한다면,

과연 마음이 흔들리겠느냐, 흔들리지 않겠느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세상에 그럴리가 어디 있느냐?

마음이 흔들린다면, 사람들이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편으로 그저 참고 나날을 보낼 뿐인 것이다.

 

가족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가족을 걱정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며, 어느 것이 잘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못하는 것이냐?

이렇게 따지면, 가족을 걱정한다면, 겉으로는 마치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도리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반면에 가족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마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속은 은근히 아프기 때문에,

도리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된다.

 

네가 한 번 네 마음을 잘 살펴보아라! 가족이 편안하게 잘 있는 것이 바로 상주(常住)요, 다름아닌 금강(金剛)이다.

왜 오직 다른 사람 말만 들으려고 한단 말이냐?

오직 다른 사람 말만 듣고 네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경계(境界)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지는 것이다.

경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면 너는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없게 된다.

너는 마음을 편안히 하는 길을 찾아가 머물지 않고 그저 외경(外境)에서만 편할 곳을 찾아가 머물려고 한다.

용담사(龍潭寺)가 편안하지 않아서 금강사(金剛寺)로 가서 묵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금강사가 조용하지 않으면 또 어디 가서 묵을 것인지 걱정되는구나.

너는 죽어도 도(道)만을 얘기하려 한다마는, 나는 지금 네게 마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추구하는 것이 외적인 환경에 달려 있다면 마땅히 금강사에서 묵어야 하고,

만약 마음에 있다면 당연히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너의 마음이 조용하지 않다면 금강사로 간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도 말거라.

설령 해외로 간다고 해도 더더구나 조용해지지 않을 것이다.

 

 

 

- 이지(탁오), <분서 焚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