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택한 이유는 책이 유일한 스승이어서가 아니라 책이 언제나 내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몰라 힘들고 막막할 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책에서 구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위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세상의 이치나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은 적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책이 번번이 그걸 무너뜨린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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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원망이 쌓일수록 말을 멈추고 책을 펼치랍니다.
고칠 수 없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고쳐야 하는 제 허물에 마음을 쓰라고 합니다.
그것만이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라고요.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제는 입을 닫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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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쓸모를 믿습니까? 나는 믿습니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다리미 대신 양복 바지의 날을 세우는 것도,
딱딱한 책상에서 베개 노릇을 해주는 것도, 팔팔 끓는 라면 냄비를 받쳐주는것도 책입니다.
참으로 쓸모 많은 물건이지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책의 가장 큰 쓸모는 침묵을 견디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그 막막한 침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책입니다.
- 김이경, <마녀의 독서처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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