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나누고 싶은 글

난초를 키우는 법

그러한 2014. 3. 13. 14:51

 

 

어떤 집의 남쪽 담장이 무너진 으슥한 곳에 난초가 자라나 있었다.

무너진 흙더미가 난초를 에워싸고, 우거진 덤불이 난초를 뒤덮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난초가 자라나 있는 줄을 몰랐다.

이에 주인이 어린 동자를 시켜서 우거진 덤불을 제거하고 무너진 흙더미를 정리하고

단을 쌓아 난초가 잘 보이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 난초를 귀하게 여겨서 그런 것이다.

그러자 곁에서 보고 있던 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난초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도리어 난초를 해치는 것이다.

무릇 이 난초는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자라나서 우거진 덤불 속에서 크면서 자신을 숨긴 채 지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자네는 흙더미를 정리하고 덤불을 걷어내어 숨겨져 있던 것을 잘 보이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귀하게 여기는 바에는 반드시 이름이 붙는 법이다.

장차 이름을 붙이는 자가 ‘이 풀은 상서로운 풀이고 향기로운 풀이다.’라고 하면서,

손으로 쓰다듬고 코로 향기를 맡아, 난초를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난초에게 있어서 다행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이 난초는 기이한 풀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곳에 숨겨져 있어서 끝내 그 기이함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또한 난초에게 있어서 다행이겠는가?”

 

라고 하니, 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것을 걱정하는가. 이 난초는 그윽한 곳에서 오래도록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장차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면, 바람을 맞고 비에 젖어 뿌리가 굳건해지고 입이 무성해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을이 되어 서리와 이슬이 내려 뭇 초목들이 시들어 죽은 뒤에는

자네 집 뜰에는 푸른빛이 도는 풀이 있을 것이며, 겨울이 되어 눈이 내려서 뭇 기운이 폐색된 뒤에는

자네의 방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향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초가 제아무리 기이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들 드러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무릇 사물이 숨겨지고 드러남은 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이처럼 급급해하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객을 돌아보고는 큰 소리로 웃은 뒤에 동자에게 손짓하여 그만두게 하고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舍南敗垣之陰。有蘭茁焉。土崩者擁之。草蔓者緣焉。過者罔有知爲蘭。主人敎童子去蔓䟽崩。壇以崇之。貴之也。客有笑于傍曰。子之貴蘭。適以害之也。夫是蘭也。惟崩中乎生。蔓側於長。幽獨掩晦。是以茂也。今子欲夷厥由生。芟厥由長。章厥由晦。貴之所在。名必隨之。將有名之者曰玆瑞草也。香草也。手就而摩。鼻就而嗅。罔以遂厥性。豈蘭之幸哉。主人曰雖然。爲玆異草也。猶閟鬱于玆。卒莫見奇。斯又其幸歟。客又笑曰奚患。夫是夫惟處幽也久。殆將顯。風滋雨潤。根鞏而葉強。方秋霜露旣降。百卉枯死。子之庭。有嫩然靑者。方冬霰雪旣集。衆氣閉蟄。子之室。有黯然香者。雖欲其不見奇。得乎哉。凡物幽若顯在時。子胡汲汲焉。於是主人顧客大噱。麾童子曰止。夫子之言。殆達者也。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난설(蘭說)」, 『뇌연집(雷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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