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헤세의 <싯다르타> 중에서 - 1

그러한 2008. 4. 29. 13:31

 

 

어느 날 고빈다는 다른 승려들과 함께

유녀 카말라가 고마타의 제자들에게 희사한 별장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거기서 하루쯤 걸리는 강가에 늙은 뱃사공이 있으며,

남다른 현명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잇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멀리 동방으로 떠나면서 그 뱃사공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그 나루터를 향해 떠났다.

한평생 불법을 좇아 살아온 그는 나이도 많으려니와 겸손한 언행으로 하여

많은 젊은 승려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아직도 마음속에는 불안과 구도심 (求道心)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강가의 나루터에 이르러 늙은 사공에게 건네주기를 청했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 배에서 내리면서 그는 사공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네 승려와 순례자들을 위해 고마운 일을 해왔소.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건네주었소. 혹시 당신도 우리들처럼 수도하는 사람은 아니오?“
싯다르타는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당신은 이미 고령에 이르고 또 고마타의 승복을 입고 계시면서

아직도 구도하는 사람으로 자처하시오?“
“그렇소, 나는 이미 늙은 몸이오.”
고빈다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구도생활을 계속하고 있소. 그것이 나의 사명인가 하오.

그런데 당신도 구도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나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겠소?"

"당신은 혹시 도를 지나치게 구하는 게 아니오?
그렇게 지나치게 구하다가는 오히려 도를 놓칠지도 모르오.“
“무슨 말이오?”
고빈다는 반문했다.
“누구나 도를 지나치게 구할 때에는 거기에만 정신을 팔게 되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법이오.

그는 언제나 그 하나의 목적에만 골똘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폐단이 있소.
구한다는 것은 한 가지 목적을 갖는 것을 말하지만,

이와 반대로 발견한다는 것은 마음이 자유로워 아무런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오.
당신이 아직도 도를 구하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려고 애쓰는데서

눈앞에 있는 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오.“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군요.“
고빈다는 좀더 상세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신은 벌써 여러 해 전에 한번 이 강가에 왔다가

거기 누워 자는 사람을 보고 옆에 지켜 앉아서 돌봐준 일이 있지요. 고빈다.......

그런데 당신은 그때 잠자던 사람을 몰라보는 구려.“
승려는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놀라며 뱃사공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싯다르타가 아니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이번에도 몰라볼 뻔했소. 반갑소. 싯다르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기쁘기 한이 없소. 그런데 당신이 뱃사공이라......
많이도 변했구려.“
싯다르타는 정답게 웃으며 말했다.
“뱃사공........ 그렇소, 사람들은 많이 변해야 하오.

사람은 여러 가지 옷을 입게 마련이지요.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오. 고빈다.....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쉬어가시오.“
그리하여 고빈다는 그의 집 바스바데의 침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고빈다는 옛 친구에게 궁금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싯다르타는 자기가
지내온 날들에 대하여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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