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쉽게 어떤 정해진 길을 밟게 되는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정해진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해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숲 속에 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내 오두막 문간에서 호수까지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우주의 시간을 지키라
시간을 지키라. 기차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을 지키라. 칠십 해를 살지라도 자신의 삶이 우주의 삶과 교감하는 신성한 여가의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급하고 거칠게만 살았다면 그 삶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 서두르고 거칠게 산다. 너무 빨리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음식의 진정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삶의 원칙
엎드려서 책만 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장작패는 법이라도 배우라. 학자들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봐야 한다. 노동은 책읽는 것 못지 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잡담과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면 당신은 그 시간동안 생각의 흐름이 끊어졌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방 안에 앉아 그 날의 경험을 단 몇줄로라도 적어보라.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더 힘있고 진실성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작가란 노동의 경험을 글로 옮겨야 하며 그 자신의 삶의 원칙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삶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
삶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이 아닌가. 삶의 해안가에서 나와 바다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웃들은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잠시 외로움을 덜어줄 동행들이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나는 또다시 홀로 길 위에 서야만 한다. 삶의 먼 여정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의 삶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자. 다수의 힘이 무엇인가? 그들은 내게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나는 참다운 인간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삶이 대체 어떤 삶이었겠는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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