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識]/on 명상

밀라레빠 - 3

그러한 2008. 5. 7. 14:48

 

동굴에서 바라보는 만상은 '하나'의 본질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눈에 덮인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멀리 바라보이는 절벽은
'하나'의 표현임을 알았다.
밤이면 어둠이 덮이고 하늘에 별들이 찬란히 빛났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다양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명상 수행에 전념하는 나 자신도 옷도 음식도 생각까지도
모두가 '하나'의 표현이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인간의 관념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것도 '하나'의 표현에 불과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하나'는 어떤 관념이나 상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직은 지적으로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비록 지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었지만
나의 본질이 이 '하나'와 합일되는 경지를 체득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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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질은 허공과 같았다. 무한한 나의 본질은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었다.
삼라만상은 나의 본질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았다.
그러나 한편 나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는 창조 이전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선악과 시비를 초월한 바로 있음(존재)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진리의 몸(법신) 자체임을 알았다.
윤회의 현상 세계와 진리의 열반(니르바나) 세계가 둘이 아니었다.
무엇이 현상 세계인지 무엇이 열반 세계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뚜렷했다. 윤회의 현상 세계도 열반 세계도 선명하게 구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별된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언어로 표현하자면 윤회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는 하나이면서 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조차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우주의 본질은 바로 일심이었다.
윤회의 현상계, 즉 삼계육도는 이 일심의 다양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주관과 객관 세계는 일심의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일심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일심 자체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디에도 편재하며 어디에도 묶이지 않았다.
또한 어느 것도 그것 자체가 아닌 것이 없었다.
우주의 본질이 개아(에고)를 통해서 표현될 때는 윤회의 현상 세계가 나타나고
개아를 통해서 표현되지 않을 때는 열반의 세계가 상존하는 것이었다.
개아라는 것은 열반의 바다에 떠다니는 물거품과 같았다.
개아는 열반의 세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현상 세계는 이 개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현상계의 세계는 개아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개아가 사라지면 윤회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반의 세계는 개아에 관계없이 상존하는 것으로
개아가 소멸되더라도 열반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열반의 세계와 개아와 윤회의 세계를 별개로 볼 수는 없었다.
하나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각각 존재한다고도 할 수 없었다.
열반의 세계와 개아와 현상 세계는 사실상 공 자체가 그 체성이었다.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공이 아님이 없었다.

이 공의 다른 표현이 일심이었다. 공과 일심은 둘이 아니었다.
열반의 세계와 현상 세계와 개아는 본질적으로 비어 있었다(공).
그러나 그것은 비어 있음(공) 자체로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며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심이었다.
즉, 공은 일심이요, 일심은 공이요 공은 만물이었다.

나는 이 체험을 통해서
부단히 명상을 하여도 어떤 큰 발전이 없고 수행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수행자가 초월적인 지혜의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음식과 편안한 의복임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몸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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