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識]/위빠사나(명상)

고엔카 - 올바른 행동(正業)을 지키는 것도 집착의 한 종류가 아닌가?

그러한 2008. 5. 17. 14:01

 

 

질문 : 올바른 행동(正業)을 지키는 것도 집착의 한 종류가 아닌가?

대답 ; 아니다.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열심히 하라. 그것들은 이루어질 것이다.

 

질문 ; 그러면 실수해도 좋다는 듯인가?

대답 ; 만약 실수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다음에는 다시 실수하지 말라. 그러나 다시 실수할 수 있다. 다시 웃고 다른 방법으로 해 보라. 만약 실패도 웃고 넘길 수 있다면 당신은 집착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실패가 당신을 우울하게 하고 성공이 당신을 우쭐하게 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 올바른 행동(正業)은 결과가 아니고 단지 노력인가?

대답 ; 결과가 아니다. 만약 당신의 행동이 좋다면 자연히 결과도 좋을 것이다. 법(法)은 인과의 사슬이다. 우리는 결과를 선택할 힘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선택할 수는 있다. 곧장 최선을 다하라.

 

질문 ; 서구에서는 많은 사람이, 서로 동의한 성인들의 성관계는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대답 ; 이런 견해는 법(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그의 욕망과 고통을 증가시킨다. 당신은 어떤 한 사람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독신생활을 해야 한다.

 

질문 ; 새로운 의식이나 괴상한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약을 사용하는 경우는 어떤가?

대답 ; 어떤 학생은 환각제를 사용함으로써 명상에서 만나는 것과 같은 경험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약을 복용해서 얻는 경험은 외적인 힘에 의존한 형태이다. 그러나 법(法)은 원해서 하기만 하면 당신의 의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당신 자신이 그대로 당신 자신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약을 사용하는 것과 의지에 의한 경험의 큰 차이점은 약을 사용한 경우 정신적 균형을 무너뜨리고 의지력을 약화시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것이고, 법(法)의 실천에 의한 진리의 경험은 수행자로 하여금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도 견고한 균형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질문 ; 술을 삼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하지 않고 적당히 술 마시는 것은 특별하게 어떤 해로움이 없는 것 같다 한 잔의 술도 계를 파하는 것인가?

대답 ; 적은 양을 마셨다 해도 결국은 술에 대한 갈망을 발전시킨다. 이것이 중독의 시작이고 결국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해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중독 상태는 한 잔에서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매우 진지하게 수행하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포도주 한 잔을 마셨다면, 그 날 당신은 당신의 명상수행이 약해짐을 발견할 것이다. 법(法)은 음주와 함께 갈 수 없다. 당신이 진실로 법(法)을 발전시키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술을 삼가야 한다. 이것이 수많은 수행자들의 교훈이다.

 

질문 ; 종종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다”라고 말한다.

대답 ; 왜냐하면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혐오감으로 행동하면 자동적으로 마음속에서 초조감을 느낀다. 당신이 탐욕으로 행동하면 쾌락을 느낄지 모르지만 마음의 심층에는 초조감이 있다. 결국 그것은 무지에서 좋은 것을 느낀다. 당신은 그와 같은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깨달을 때 자연적으로 그런 행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질문 ; 고기를 먹는 것은 계를 파한 것인가?

대답 ; 아니다. 당신이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면 아니다. 만약 당신에게 우연히 고기가 제공되고 당신이 그것을 다른 음식처럼 맛있게 먹었다면 계를 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고기를 먹음으로 인하여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살생계를 범하도록 부추긴 것이 된다. 동물은 언제나 탐욕과 화를 일으킨다. 동물은 그 스스로를 관찰하고 그 마음을 정화시킬 수 없다. 동물의 온 근육은 탐욕과 화로 퍼져 있다. 당신이 채식이 아닌 육식을 먹을 때 이것들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수행자는 화와 탐욕을 없애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식을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질문 ; 당신은 일상생활에서도 채식을 권하는가?

대답 ; 그것이 유익하다.

질문 ;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에 의한 저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답 ; 그것은 상황에 달려 있다. 만약 공격자가 무력 이외에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면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물리적 힘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용기에 의해서 저항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법(法)의 길이다. 그리고 이것이 간디의 방법이었다. 무장된 적을 빈손으로 대항하는 것은 용기를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죽음은 곧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람은 두려움에 떨거나 아니면 용기 있게 죽을 수도 있다. 법(法)의 죽음은 두려움이 없다. 간디는 무력적 탄압 앞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동료의 시체를 등에 메지 말라, 당신의 가슴으로 안아라.” 고 했다. 법(法)이 간디의 가슴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