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쯤에 오늘 밤 묵을 곳인 천주교 숙소(Procure Catholique Evangélique)에 방을 잡았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내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묵을 수 있는 방으로 8,000세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어젯밤의 호텔보다는 훨씬 쾌적하고 조용해서 그리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거기에다 아침과 저녁을 먹을 수도 있는데 각각 1,000세파 3,000세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일반 식당과 가격은 비슷하지만 프랑스교회 측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정통(?)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은 미리 주문해 두었다. 남은 일은 즐겁게 음식 맛을 상상하며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일 뿐이다.
저녁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어서 시내 트랙킹에 나섰다. 우선 생수부터 400세파를 주고 샀다. 역시 야운데에 비해 비싼 편인데, 도매상 비슷한 곳을 우연히 지나치다 산 것이어서 그나마 싸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두알라왕궁(Palais Roi de Douala)까지는 슬슬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카메룬에는 200여 종족이 있다는데, 그 중에서 왕국을 이룩한 종족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두알라왕국은 서구에 개방되는 역사적 과정에서 이 나라를 대표해서 서명하는 역할을 했었다. 물론 그들이 지금의 두알라 근처를 기반으로 해서 항구를 장악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 만큼 강성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런 왕의 궁전치고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초라해 보인다.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처음에는 내부를 둘러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몰듯이 쫓아내는 것이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자니, 스스로를 왕족의 먼 후손이라고 소개한 젊은 남자가 나와서 안으로 안내했다. 유럽, 아시아, 남미의 각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이 하나씩 지어져 있어,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2층에는 전통 기념물이 많다고 하지만 개방하고 있지 않아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독수리와 악어를 부족 내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있고, 앞으로 여행하게 될 품반Foumban의 바문Bamoun족과는 같은 조상에서 기원한 형제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문족을 지켜준다는, 그래서 그들의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 머리 뱀’ 문양도 볼 수 있었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두알라왕족의 기원은 이집트의 '파라오'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자부심이 한층 더한 모습이었다. 요금은 내고 싶은 만큼 내라고 해서 1,000세파를 내고 나오는 길은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이런 역사적 건물이 그리 잘 관리되고 있지않는 모습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짚어보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바나나 3개를 사 보았다. 야운데에 비해서 무척 비싸다고 이야기하자, 두알라는 ‘경제 수도’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름대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는데, 일반 주민들의 사는 모습은 그에 부합되지 않아 보이는 것은 왜 일까? 특히나 두알라는 카메룬에서도 범죄발생율의 증가가 가장 우려되는 곳이라고 하니, 경제발전이 개인의 행복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친 김에 숙소 주변에서 바다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좀 걸어보았지만 이내 단념하고 돌아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누는 없지만 간단히 씻고,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여러 가지 여행의 즐거움 중에서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 곳은 프랑스교단 소속 교회이니 만큼 프랑스요리를 기대하는 것도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식사는 1층 식당에서 프랑스 신부, 다른 투숙인들과 함께 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주교 신자들인데, 아마 용무상 들른 것 같았다. 각자 자기 소개를 했는데,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천주교 선교사로 콩고 등에서도 활동을 했다고 한다. 누구도 이방인으로 대하지 않고 그저 원래 알던 것처럼 대해주는 것에 마음이 편했고 여행의 안녕도 빌어주었다.
음식은 프랑스 요리가 카메룬화한 듯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채로는 야채 스프, 빵을, 주식으로 스테이크, 피자, 구운 닭, 야채, 삶아서 으깬 감자 조금씩을, 후식으로 화채, 바나나를 와인과 생수를 곁들여 먹은 만찬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쉬면서, 내일 일정을 대강 생각해 보고 가져간 책도 읽었다.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멀리로 보이던 바다 근처의 불빛과 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게 이틀째의 하루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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