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30일(수) : 쿰바로
- 새벽에 비 약간, 쿰바(
어제는 차에 시달리지않아서인지 일찍 일어났다. 부지런히 씻고, 아침 식사 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오늘 일정은 두알라와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도시인 쿰바로 가는 것이어서 서둘러 숙소에서 나왔다. 시외버스정류장(Gare Routière)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택시를 이용해서 로터리인 롱쁘웽Rond Point으로 가서 다른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롱쁘웽에 도착해서 내가 택시 문을 여는 순간, 모터사이클이 부딪혀서 뒤에 타고 있던 승객이 찰과상을 입어 무릎과 손가락에 피를 흘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정신이 없는데, 모터사이클 운전사는 자신의 과실이 아님을 항변이라도 하듯 오히려 나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금방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니 금새 잠잠해진다. 정신을 차리고 승객이 살펴보니 다행히 피를 약간만 흘린 상태였다. 괜찮다고는 말하지만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1,000세파를 건네주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년 만에 얻어 온 휴가를 겨우 두알라까지 와서 중도에 그만둬야 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고 보니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는데 300세파를 요구했다. 조금 비싼 듯했지만 초행길이니 감수하기로 했다. 도착해서 쿰바행 버스표를 사서 차에 올랐다.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1,500세파면 적당한 요금이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조금 전 큰 맥주병을 기울이던 오른쪽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호기심을 내비치며 껌 2개를 건넨다.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제법 많은 양으로 변하는데도 출발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시간 반정도 기다린 끝에 정원(?)을 다 채우고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9인승 승합차에 운전사를 제외하고 15명을 태운 것이다. 그나마 일찍 자리를 잡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의 한 아가씨는 거스름 돈이 맞지 않아서 도로 내려야 했는데, 비는 오는데 2시간 이상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비가 와서 바깥 풍경이 잘 보이지 않지만 도로는 좋은 편이다.
세 시에 거리로 산책을 나섰다. 소읍 정도의 자그마한 도시인데 포장된 도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오전에 내린 비로 인해 온통 흙탕길을 이루고 있어서 제대로 걸어 다니기도 힘든 형편이다. 이 곳에 사는 외국인들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경찰이 불쑥 앞을 막고 섰다. 이 곳이 특별한 관광지도 아니고, 별로 볼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뭐 하러 왔냐는 듯 하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기에 내밀었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봉사단으로 이 나라 외무부에 근무하는 덕분에 특별체류증으로 발급받은 것이 이렇게 효과를 발휘할 줄은 몰랐다. 외무부에서는 이번 휴가를 허락해 주면서 서류도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경찰이나 군인에 대해 특별히 잘 대해주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아무튼 그 서류까지 꺼내 보여주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다니다 보니 출출해져서 숙소 근처의 작은 가게에서 구운 고등어와 작은 맥주를 하나 시켰다. 길가에 놓인 가게 앞 작은 탁자에 앉아 있으려니,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오는 듯하다.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동네에 뚝 떨어져 앉아있는 이런 한가로운 시간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가졌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좇아 늘 그렇게 번잡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엄마인 듯한 가게 아주머니가 심하게 꾸중하는데도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듣고만 있는 고등어 구워 파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고 착하다는 생각도 든다.
호텔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주변도 둘러볼 겸 식당을 찾아 나섰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큰 길까지 나가면 작은 식당이라도 있을지 모르는데 웬지 그러고 싶지 않다. 아까 고등어를 먹어서인지 사실 그리 배가 고픈 것도 아니다. 그래도 밤에 배가 고플 것을 대비해서, 가게에서 콜라 한 병, 바나나 4개, 쵸콜렛 2개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서 저녁식사 메뉴는 비상식량(!)이 되었다.
숙소의 시설은 괜찮은 편이지만 관리는 그리 잘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직원들도 친절한 편이지만 침대 시트, 모포 등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화장실은 전구가 고장나 있었는데, 세면대 위의 보조등을 세게 두드리면 불이 들어오니까 그냥 참을만했다. 야운데 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박쥐울음소리로 생각하던 고주파음이 들리는 듯 한데, 근처에 혹시 박쥐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환청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혹시 야운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잡았다는 것인가? 아직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근처의 호수를 둘러 볼 계획이어서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등의 소음이 심한 편이어서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가 12시쯤에 가까스로 잠들었다.
'[삶-食] > 새우의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맘페로 - 2 (0) | 2008.07.10 |
---|---|
2000년 8월 31일(목) : 맘페로 - 1 (0) | 2008.07.10 |
두알라에서 - 2 (0) | 2008.07.10 |
2000년 8월 29일(화) : 두알라에서 - 1 (0) | 2008.07.10 |
2000년 8월 28일(월) : 두알라로 (0) | 2008.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