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31일(목) : 맘페로
- 맑음, 맘페(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고 옷만 챙겨 입고 바로 숙소를 나섰다. 근처에 있는 바롬비음보Barombi Mbo 호수를 보기 위해서다. 어제 숙소 주인아저씨도,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뜸 바롬비 호수에 가려면 일찍 출발하라고 일러준 만큼 기대가 크다. 한 20분 가량 외곽으로 달린 택시는 언덕의 갈림길에서 더 이상은 올라 갈 수 없다며 내리라고 했다. 당초 숙소에서 호수까지 걸어가려고 생각했던 것이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걸어가자니, 오른쪽은 위로 솟은 절벽이고 왼쪽은 아래로 깎인 절벽이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진다.
20분 남짓 걸어 호수에 도착하니, 물도 맑고 주위도 무척 아름다운 넓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천지나 백록담처럼 화산분화작용으로 생긴 자연 호수인데, 길 주변에 깎인 벽의 화산지층과 바닥의 토양 등으로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많은 주민들이 와 있었는데 일부는 고기를 잡기도 일부는 짐승을 잡으러 나온 것 같았다. 쿰바에 산다는 두 어린 형제가 자청해서 안내를 하겠다는 바람에 그러라고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더러는 있는 모양이다. 매고 있던 자루에서 새벽에 잡은 듯한 두더지와 고등을 내보이면서 사지 않겠느냐고 물어오기도 하는 폼이 당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중간쯤에 200세파를 주었더니 만족하는 듯 하다.
호수 건너편에 마을이 있는데, 고기 잡는 카누를 이용하면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가보고는 싶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고 혼자라는 점도 마음에 걸려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신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기슭에서 위로 조금 올라가면 호수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휴게실처럼 꾸며 놓은 곳도 있는데, 독일 지배 당시에 지은 건물도 아직 볼 수 있다고 한다.
피를 빨아먹는 흑파리 - 무뚜무뚜 - 의 극성으로 더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택시 타는 곳까지 걸어서 나왔다. 오를 때와는 또 다르게 평화롭고 순박한 분위기가 가슴 깊이 느껴지는 듯했다. 택시가 금방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계속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집들은 대부분 나무와 흙으로 지어져 있는데 몇 집 사이에 하나씩 있는 공동수도를 이용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물론 나도 마주 흔들었다. 가다 보니 세관 여직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가 불러 세웠다. 잠시 긴장했지만 조금 후에는 같이 웃을 수 있었다. 다음은 우리 대화의 일부 :
세관원: "Come!"
나: "Why? I'm in a hurry now"
세관원: "Come first!" "I love you, you love me?"
나: "Of course!!"
중간쯤에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씻고 빵과 음료수로 간단히 아침식사도 했으니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바로 숙소를 나섰다.
서부지방에서 나이지리아로 통하는 마지막 도시인 맘페Mamfé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우선 <트리코다>라고 불리는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택시를 이용해서 11시쯤에 그 곳에 도착하니, 버스회사 직원들이 승객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너무 심해서 승객들의 짐을 빼앗다시피 하여 자기네 차에 마구 싣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우선 거칠게 몸을 비틀고 빠져 나와서 입구에 있는 직원사무실로 몸을 피했다. 그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쉽게 표를 사고 차에 올랐다.
국경에 이르기 전 마지막 도시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3,000세파나 되는 요금은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차에 올랐으니 출발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고, 맘이 다소 느긋해지니 입이 심심해진다. 작은 플라스틱 통을 이고 다니는 아이를 불러, 기름에 튀긴 작은 과자인 칭칭을 사먹어 보니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한 시간 반정도 기다려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승객들의 하차를 위해서 차가 선다. 쿰바를 벗어나서 한 시간 반정도 비포장길이더니, 다시 한 시간 가량은 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이 곳은 주위 경관도 좋고 고가도로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곳도 눈에 들어 온다. 이후로 맘페까지의 나머지 도로는 다시 비포장도로인데, 특히 맘페에 들어서기 직전의 도로상태가 공사 중이어서인지 극히 불량했다. 차가 멈출 때마다 소야나 삶은 땅콩을 사 먹는 재미가 있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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