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두 번째 헛을 향해 출발이다. 위를 굽어 보니 이제까지 지나온 길과는 다르게, 숲은 보이지 않고 간간히 작은 나무들과 풀들만 보이는 황량한 풍경이 압도한다. 사바나 산지 구역인데, 바닥에는 용암이 분출했던 흔적인 화산토로 덮여있고 크고 작은 돌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카메룬산은 휴화산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1998년에 용암이 분출했었다.
등산로는 상당히 가파른 경사로 계속 이어지는데, 대략 30분 간격으로 앉거나 서서 쉬어야 했다. 경사가 심한 곳은 앉기도 힘들고 오르기도 벅차니까 서서라도 쉬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구간은 등산로가 명확한 것도 아니어서, 간간이 놓인 흰 페인트가 칠해진 돌을 이정표 삼아서 올라가야만 한다. 가끔 하산하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이미 정상이나 두 번째 헛까지 올랐다가 내려가는 그들이 부럽게 보였다. 그 중에는 여자들과 노인들도 많았는데, 힘내라고 말해 주고 얼마 안 남았다고 격려해 주는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이는데 아마 나처럼 연휴를 이용해서 두알라 혹은 야운데에서 온 사람들인 것 같다.
두 번째 헛에 가까울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어 다리에 힘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현지인 포터를 동반해서 오르고 있었다. 어떤 포터는 짐을 너무 많이 이고지고 오르고 있었는데, 서로 아는 사이인 듯 가이드가 일부 짐을 나누어서 도와주고 있다. 대부분의 짐을 포터들에게 맡기고 간편하게 오르는 외국인들에 대해서 그리 좋지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는데, 간간히 그들끼리만 들리게 욕설을 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생수를 비싼 가격에 팔려고 지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보통 정상가격보다 5배 이상 비싼 2,000세파에 판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특별히 1,000세파에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후 네 시에 두 번째 헛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어서 30분 정도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계속 쉬었다. 가이드는 힘들지도 않는지 이내 텐트 칠 자리를 알아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뜬다. 이미 50여명 이상은 족히 될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어서 헛 안에서 자기는 틀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 연휴를 이용해서 많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온 듯했다. 정상에 오르는 길에 있는 세 번째 헛은 밤에 너무 추워서, 보통 이 곳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새벽에 정상에 오른 다음 하산한다고 한다.
헛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이드가 익숙한 솜씨로 마른 풀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치는 동안 나도 어설프게 로프를 매는 등 돕는 시늉을 했다. 옆에는 이미 다른 텐트가 쳐져 있었는데, 프랑스인 남자는 너무 힘들었다며 일찌감치 텐트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친구, 친구 애인과 셋이서 올라오다가 두 사람은 힘들다며 도중에 하산했다고 한다. 혼자 지낼 수 있게 되어서 오히려 잘됐다고 호기롭게 외치더니 속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때문에 가까운 거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형으로 봐서는 산인데 나무나 풀이 거의 없어 황량함 마저 드는 것이,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어두워지기 전에 식사를 끝내기 위해서 가이드와 마주 앉았다. 우리가 준비한 식량은 식빵, 정어리 통조림, 생수 밖에 없다. 가이드가 익숙한 솜씨로 식빵을 반으로 나누어 그 사이에 정어리를 끼워 건네준다. 웬지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컵라면이 생각나지만, 정어리 샌드위치도 생각보다는 맛이 있다. 그 사이에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소변을 보는 것으로 취침 준비를 끝내고 텐트로 들어갔다.
겨우
텐트자락이 심하게 펄럭이는 소리를 들어봐서는 바깥에 바람이 제법 부는 것 같다. 우려했던 대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무척 추운데, 특히 발가락 끝부분에 예민하게 한기가 느껴져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낮에 침낭을 받아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계속 뒤척이면서 최대한 새우처럼 웅크려봐도 추운 건 마찬가지다. 내가 뒤척이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잘 자고 있는 가이드가 신기해 보인다. 내일 새벽에 산에 오르려면 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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