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월 2일 11일(일) : 붸아에서
- 맑음, 하산길(
계속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 세시 반쯤에 가이드가 일어났다. 무척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정상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산행을 하려면 지금 출발해서 정상에 갔다 와서 아침을 먹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한다. 컨디션이 엉망이라서 망설여지지만, 잠도 오지 않는데 계속 누워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빨리 갔다 오면 다시 잠을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다행히 어슴푸레하게 달이 비춰주고 있고, 준비해 간 비상용 소형랜턴에 의지해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니까 황량해 보이던 주위 풍경이 제법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해서, 헛구역질이 나고 귀도 멍멍해지면서 순식간에 피로가 밀려 들었다. 보통 해발 3,000미터를 넘어서면 느끼게 되는 고산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문제는 미처 생각지도 못 한 데다가, 잠을 자 두지 못해서 피로가 풀리지 않은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았다.
몸을 해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힘들면 그만 내려가자는 가이드의 말은 못 들은 채 하고, 계속 쉬면서도 올라가는데 점점 견디기가 힘든다. 할 수 없이 숨을 몰아 쉬며 앉아 있으려니, 아래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점점이 랜턴을 밝히며 올라오더니 나를 지나쳐서 정상으로 향한다. 힘내라고 한마디씩 하면서 격려하는데, 철저히 장비를 갖춘 그들을 보니 오히려 맥이 빠지면서 내려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도 내려가서 쉬면서 몸을 추스린 후에 다시 올라오자고 한다. 다시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더 실망스러웠다.
다섯 시에 텐트에 도착하니 안도감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와서 그대로 텐트바닥에 몸을 부렸다. 그 때부터 두 시간 반정도 잤던 것 같은데, 잠결에 가이드가 자신이 덮던 홑이불 비슷한 천을 나에게 덮어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일어나서 아침식사로 또 정어리를 속에 넣은 식빵을 먹었다. 커피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마실 것은 물 밖에 없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다시 힘이 솟는다. 하지만 다시 산에 오르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텐트를 걷고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오전 여덟시 반이다.
내려가는 길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바닥에 굵은 입자의 부스러진 돌들이 많아 미끄러워서, 조심해서 내려가지 않으면 넘어지기 쉽상이다. 가이드가 나무지팡이를 만들어 줘서 한발 한발 짚으며 내려오니까 한결 편하다. 아침시간이어서 그런지 내려가는 사람도 올라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이 산 전체에 우리 두 사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 시간에 한번 정도씩 쉬면서 중간쯤 내려오니까, 조깅하듯이 뛰면서 아래에서 오르는 사람이 보인다. 뛰는 폼이 무척 경쾌한 걸로 봐서 아마 운동선수 인듯한데, 나와는 다른 신체구조를 가진 것 같다.
어제 지나왔던 첫번째 헛에 다시 들어섰다. 간밤에 누군가 묵었는지, 불을 피운 흔적도 보이고 주위가 매우 지저분한 상태이다. 물을 마시며 조금 쉬면서 가이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붸아 출신인데 지금은 근처에 있는 림베에 살면서 산행이 있으면 그때마다 이곳에 온다고 한다. 월급으로는 25,000세파를 받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하기도 빠듯해서 산행이 없을 때는 다른 일도 해야 된다고 한다. 여느 카메룬 사람들처럼 라디오를 옆에 차고 다니며 듣고 있는데, 노래를 무척 좋아해서 6월에 두알라에서 있을 마코사Makossa 경연대회에도 참가할 거라며 자신만만하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비록 적지만 일상의 작은 것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식으로 치면 전국노래자랑인 마코사 경연대회에서의 건투를 빌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니까 훨씬 덜 지루한 하산길이 될 것이다. 내려오다 보니 생쥐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서 열심히 무언가를 먹고 있는데, 우리가 지나가도 피하지 않고 무심히 하던 동작을 계속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는데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듯 하다. 생각해 보니 야운데 시내 길에서도 쥐들이 음식물을 먹으면서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것을 몇 번 본 일이 있다. 사람이 쥐 – 동물 – 와 더불어 살 수 있다면, 두려워할 것도 쫓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중간에 한 번 쉬고는 곧장 입구까지 왔다.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산과 밭과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인다.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와서 가이드와 헤어지면서 팁으로 1,000세파를 주니까 무척 좋아한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꼭 정상까지 같이 가자는 말에, 불현듯 지난 하루가 꿈같이 느껴진다.
오늘은 이 곳에서 쉬고 내일 떠날 생각이니까 숙소부터 잡아야 한다. 30분 가량 걸어서 호텔을 찾았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 이미 두 시가 지난 시각이라 배가 고파서, 길가에 있는 바에 들어가 스프라이트를 사서 남아 있던 빵과 같이 먹었다. 생수도 하나 샀는데 여기서는 이 지역에서 나는 생수 – Supermont - 만 파는 모양이다. 야운데에서 흔히 마시던 생수인 땅귀Tangui는 보기 어렵다.
바의 직원이 추천해 준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주위가 다소 소란스럽지만 시설은 괜찮아 보인다. 가격이 생각보다는 비쌌지만 다시 움직이는 것도 힘들게 느껴져서 그냥 머물기로 했다. 조용한 방을 부탁하니까 마침 길 반대쪽에 면한 방이 하나 남았다며 안내해준다. 먼저 샤워부터 하고 가만히 쉬고 앉았으니 소란스러운 바깥의 소음도 활기차게 느껴진다.
다섯 시쯤에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뒤를 받치고 있고, 그 아래 펼쳐져 있는 자그마한 마을풍경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진다. 저녁 무렵이라서인지 산의 모습이 뚜렷하게 잡히는데, 높이에 비해 완만하게 그려진 능선이 마치 힘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거인을 보는 듯하다. 시골지역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인사도 건네고 길도 잘 알려주는 등 대체로 친절하다. 청년의날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었던지 프랑스문화원 앞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다. 제법 넓은 마당은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는데,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장난치면서 놀고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어떤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이 신기한지 악수를 청하면서 자기들끼리 좋아라 하는데,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같다. 길거리 옆에 많이 쌓아둔 채로 팔고 있는 토마토가, 노을 빛을 받아서인지 더 빨갛게 보인다.
호텔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스테이크, 감자튀김, 맥주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 방으로 와서 잠시 쉬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밤은 어제 몫까지 쳐서 단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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