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럽공원 여행
노동절 휴무가 주말 다음의 화요일이어서 가운데 끼인 월요일까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일 년 넘게 생활하는 동안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흥이 많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반영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능률적인 면에서 오히려 바람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긴 연휴가 시작된 만큼 평소에는 멀어서 가보지 못했던 코럽국립공원을 여행하였다. 코럽공원은 카메룬 서부 나이지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희귀한 수목이 많아서 지역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는 곳이다. 당초에는 세계적인 동식물보호단체인 WWF에 의해서 이 지역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보호×관리되었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관리하면서 WWF 관계자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돌아오는 길에는 두알라 부근의, 검은모래해변으로 유명한 림베도 둘러보았다.
2001년 4월 28일(토) : 문뎀바로
- 맑음, 두알라(
문뎀바(
코럽Korup국립공원이 있는 문뎀바Mundemba에 오늘 안에 도착하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했다. 문뎀바로 직접 가는 차편은 없고 두알라, 쿰바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두알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아침식사도 거르고 7시 반쯤에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버스회사로 갔다.
두알라행 버스표를 사고나서 보니 출발시간이
버스가 한 대 들어서고, 사람들이 그 앞으로 가서 줄을 서길래 나도 질세라 얼른 줄을 섰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나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용변이 급하다. 배낭을 자리에 두고 다시 내려서 50세파를 지불해야 하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차를 타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은 이 곳에 와서 새로 생긴 버릇인데, 중간에 어떤 사정이 생겨서 도착이 늦어질지 알 수 없고, 대부분의 현지인 남자들처럼 길에서 바로 해결하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시선이 더 집중되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예정시간보다 5분 일찍 차가 출발한다. 이 곳에 와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야 겨우 차가 출발하는 경우는 많이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놀랍다. 몇 번 다닌 길이다 보니 이제는 창 밖의 풍경에 별 다른 감흥이 없다. 에데아에 도착해서는 차창을 통해서 땅콩을 샀다. 껍질째로 삶은 것 한 봉지를 100세파에 살 수 있는데, 아침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픈 참이라서인지 더 맛있다. 카메룬에는 땅콩이 많이 생산되는데, 볶은 땅콩을 작은 봉지나 병에 담아 파는 모습은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음식에도 많이 활용하는 편인데, 갈아서 소스를 만드는데 주로 들어간다.
세 시간 조금 더 걸려서 두알라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택시를 이용해서 롱쁘웽으로, 다시 다른 택시로 바꿔 타고 시외버스정류장이 있는 보나베리Bonaberi로 달렸다. 다음 목적지인 쿰바행 표를 사서 차에 올랐다. 한 번 차를 놓치면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므로 늘 차편부터 확보해 두고 다른 볼 일을 봐야 한다. 이미
한 시가 조금 못 되어 드디어 출발이다. 도로는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어 별 탈 없이 계속 달리고 있다. 골프장이 있는 작은 마을인 티코Tiko, 림베와의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무텡게네Mutengene를 거쳐 어느새 붸아에 닿았다. 승객들이 내리느라 차가 멈춘 사이에 어김없이 창을 통해 제공되는 닭다리 소야를 하나 사 먹으니 무척 맛있다. 다른 곳은 고기를 잘라서 꼬치에 끼워 파는데 비해, 이 곳은 다리를 통째로 파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인데 가격은 200세파로 두 배이다.
다시 출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에코나Ekona, 무유카를 지났다. 조금 더 가더니 쿰바로 가는 사람들은 다른 차로 옮겨 타라고 한다. 별생각 없이 앉아있다가 운전사가 마지막으로 물어 봐줘서 겨우 탈 수 있었다. 막 출발하려는 참이어서 거의 놓칠 뻔했는데, 작년에 와본 길인데도 다시오니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쿰바 전방 33Km부터는 군데군데 비포장도로로 움푹 패인 구간이 많아서 승용차로 다닐 때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밤에 과속이라도 한다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쿰바에 도착했지만 감회에 젖을 여유가 없다. 문뎀바로 가는 버스는 음봉게Mbongé정류장으로 가야 한다기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가다 보니 야운데와 쿰바 사이를 오가는 대형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진작 알았으면 타고 왔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차에서 차로 조바심치며 옮겨 다닌 모습이 우습게 느껴진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해봐야 부질없는 일이고 다음에 올 일이 있다면 한 번 이용해 볼 만하겠지만, 또 이 곳에 올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표를 사서 차에 올라 출발하기만 기다렸다. 요금이 3,500세파이니 앞으로 너댓 시간정도는 가야 될 것 같다. 다행히 30분 정도 있으니 차가 움직인다. 이번 차는 10인승인데 모두 18명이 타고 있다. 차가 무거워서 빨리 달려도 넘어질 염려는 없을 듯 하다. 얼마가지 않아서 차가 멈추는데 운전사까지 포함해서 다들 내리더니 골목으로 들어간다. 잠시 있으니까 모두들 가지 채로 달린 쁠랑땡을 한아름씩 안고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이 곳이 아마 싸게 살 수 있는 곳인 모양인데, 우리로 치면 좋은 쌀을 싸게 사서 자루 채 들고 오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부자가 된 듯 하다.
지붕에 모두 싣고 다시 출발해서 조금 더 가니 이내 음봉게에 도착했다. 이 곳 이름을 따서 쿰바의 정류장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비가 약간씩 내리기 시작하는 길을 30분 더 달려 에콘도티티Ekondo Titi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저물고 있다. 잠시 서는가 싶었는데 모두 내리라고 한다. 이 곳부터는 부쉬택시로 갈아타고 가야된다고 하며 근처에 있는 차를 지목해 준다.
놓치면 큰일이다 싶어서 차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운전사가 잠시 다녀오겠다며 차를 몰고 가버린다. 벌써 날은 어두워져서 차가 다시 온다고 해도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어쩌면 오늘밤 여기서 묵게 될지도 모르는데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대책도 없어서 누군가가 건네준 오렌지를 하나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오더니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온 마을이 정전되어 버린다. 마침 택시가 다시 왔는데, 알고 보니 차에 승객이 다 차지 않아서 마을을 다니며 승객들을 모으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운전사까지 모두 7명이 타고, 트렁크에는 돼지도 두 마리 싣고 나서
비는 더욱 거세지고 천둥, 번개도 계속치고 있다. 앞 자리의 좌석 아래로 들어온 물이 뒤쪽으로 넘어오고 있고 창문으로도 빗물이 튀어 들어온다. 우산을 약간 펴서 막아보았지만 자리가 비좁아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가끔씩 트렁크의 돼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놀라면서 가다 보니, 앞쪽에 다른 차가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 보여서 잠시 멈춰 섰다. 고장난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집으로 모두 대피해 있었다. 다 같이 가서 걱정해 주고, 운전사는 우리 차에는 문제가 없는지 나름대로 점검한 다음 다시 출발했다.
얼마가지 않아서 승객 두 사람이 내린 뒤부터는 몸을 움직일 공간이 생겨서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 이제 비도 그쳐 한숨 돌렸다 싶었는데 차가 또 멈췄다. 수렁에 빠진 것인데,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헛바퀴만 돌고 꼼짝하지 않는다. 모두 내려서 밀자고 말하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 자리에 타고 있던 사람이 밀어서 겨우 빠져 나왔다.
그 후로 한 번 더 멈추었지만 이내 곧 출발했고
방이 다 나가서 없다길래, 벌써 밤 열 시이고 이 시간에 갈 만한 곳도 없다고 했더니 쓰던 방 하나를 비워준다. 문도 잠기지 않고 거울도 없는 방인데 5,000세파나 내기는 아깝지만 다른 대책이 없으니 하룻밤만 그냥 지내기로 했다. 식사를 주문하니까 밥 위에 몇 가지 야채를 올리고 소스로 덮은 것을 갖다주는데 그런대로 맛있다. 맥주도 한잔 하고 나니까 이미 시계는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다. 소화도 되지않은 상태지만 내일 일찍 움직여야 하니 대강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문이 잠기지 않아서 꺼림칙하긴 하지만, 오늘 하루 온 일을 생각하니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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