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5일(일) : 야운데로
- 맑음, 야운데(
새벽 두 시에 드디어 개표가 시작되었다. 당초 예정시각인
좌석은 마치 병원 휴게실에 있는 의자처럼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두 자리씩 마주보게 되어있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다리가 서로 겹칠 정도이다.
출발하면 화장실의 악취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이다. 얼마 가지않아 차가 멈추더니 다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않는다. 그 사이에 차장의 검표가 있었고, 벨라보에서 같이 탄 장님남자가 혼자서 큰소리로 계속 떠드는 소리를 듣고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을 ‘벨라보의 불한당’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아까 역에서 기다릴 때부터 주의를 끌었는데, 옆자리에 앉게 되니 흥미롭기도 하고 여행이 괴로워질 것 같기도 하다.
반대방향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니 아마 은가은데레로 향하는 것이리라. 아직 새벽인데 바깥에서 승객들에게 바똥이나 바나나를 팔기위해 나와있는 여인들이나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전달되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진다. 40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다시 출발하는데, 좀 전에 지나친 은가은데레행 열차를 선행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듯 하다. 계속 속이 쓰려와서 바나나 두 개를 먹으니까 좀 낫다. 몇 번에 걸쳐 잠깐씩 차가 설 때마다 승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차창을 통해서 바똥 등의 음식물을 많이 사들이는 것이 마치 시장을 보는 것 같다.
야운데까지는 125Km 정도 남았다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보고 다시 출발하니, 사나가강의 모습이 간간이 보이고 열대우림의 키 큰 나무들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진다. 벌써
바첸가Batchenga를 지나쳐, 야운데에서 45Km 정도 떨어진 오발라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니, 카메룬 남자들도 한국 남자들 못지않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여자들이 모든 짐을 챙겨 들고 가는데 남자들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차 안에서도 바똥이나 과일의 껍질을 여자가 벗겨주지 않으면 먹지않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차가 야운데역에 천천히 접어드니,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빈 플라스틱 병을 던져달라고 외쳐댄다. 가게에 가져가면 하나에 15세파를 쳐준다고 하니, 아이들에겐 심심찮은 군것질거리를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기도 하겠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샤워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여행의 긴장이 좀 풀어진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눈을 부치지 못해서인지 잠이 몰려온다. 잠깐 잔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세 시간 정도가 지나갔다. 이미 늦은 오후인데 우선 빨래부터 하고 산책을 나섰다. 새삼 야운데의 일상이, 주위 이웃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저녁에는 여행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근처의 깨끗한 식당으로 가서 자축의 만찬을 들었다. 다음 여행까지는 또 야운데의 골목을 누비면서 길 위의 날들을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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