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1년 4월 15일(일) : 야운데로

그러한 2008. 7. 12. 12:37

 

2001 4 15() : 야운데로

 

- 맑음, 야운데(9:40, 기차)

 

새벽 두 시에 드디어 개표가 시작되었다. 당초 예정시각인 자정으로부터는 한참 지났지만, 지금은 차가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다. 플랫폼에 나섰지만 어느 방향으로 열차가 들어올지는 모른다고 한다. 다시 20분쯤 더 기다려서 도착한 열차에 오르니까 모든 좌석이 다 차있다. 이제 보니 2등석은 좌석이 지정되어있지 않아서 표에도 번호가 나와있지 않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서 간신히 한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좌석은 마치 병원 휴게실에 있는 의자처럼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두 자리씩 마주보게 되어있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다리가 서로 겹칠 정도이다. 저녁 6시 반에 은가운데레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야운데에 언제쯤 도착할지는 미리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제법 크고 싱싱한 바나나를 4개 사고나니 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출발하면 화장실의 악취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이다. 얼마 가지않아 차가 멈추더니 다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않는다. 그 사이에 차장의 검표가 있었고, 벨라보에서 같이 탄 장님남자가 혼자서 큰소리로 계속 떠드는 소리를 듣고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을 벨라보의 불한당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아까 역에서 기다릴 때부터 주의를 끌었는데, 옆자리에 앉게 되니 흥미롭기도 하고 여행이 괴로워질 것 같기도 하다.

반대방향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니 아마 은가은데레로 향하는 것이리라. 아직 새벽인데 바깥에서 승객들에게 바똥이나 바나나를 팔기위해 나와있는 여인들이나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전달되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진다. 40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다시 출발하는데, 좀 전에 지나친 은가은데레행 열차를 선행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듯 하다. 계속 속이 쓰려와서 바나나 두 개를 먹으니까 좀 낫다. 몇 번에 걸쳐 잠깐씩 차가 설 때마다 승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차창을 통해서 바똥 등의 음식물을 많이 사들이는 것이 마치 시장을 보는 것 같다.

5 40에 차가 멈춘 우아사바음벨레Ouassa-ba Mvele라는 곳에서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금 있으니까 승객들이 차에서 내려 용변을 보기도 하고 양치질을 하는가 하면 아예 느긋하게 누워서 쉬고 있다.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치고 있는 내게 승객들의 그런 모습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느긋한 표정으로 마치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방송이라도 해 주면 좀 낫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 같아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7에 다시 출발했는데 왜 정차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차가 섰으니 서는 거고, 가니까 가는 거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시 낭가에보꼬Nanga Eboko에 잠시 정차했을 때는,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공사에 사용할 것이라는 파이프가 잔뜩 실려있는 열차를 볼 수 있었다. 카메룬 국토를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설치하는 이 사업은, 주변국들과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서 향후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일이지만,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운데까지는 125Km 정도 남았다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보고 다시 출발하니, 사나가강의 모습이 간간이 보이고 열대우림의 키 큰 나무들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진다. 벌써 9 넘은 시각이라서 배가 고파오는데 다행히 차가 선다. 차창을 통해서 삶은 옥수수를 50세파에 사서 실하게 박힌 찰진 알을 다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고 맛도 기막히다. 평소에는 삶은 옥수수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을 봐도 그리 위생적인 것 같지 않아서 잘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니까 못 먹을 것이 따로 없다.

바첸가Batchenga를 지나쳐, 야운데에서 45Km 정도 떨어진 오발라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니, 카메룬 남자들도 한국 남자들 못지않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여자들이 모든 짐을 챙겨 들고 가는데 남자들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차 안에서도 바똥이나 과일의 껍질을 여자가 벗겨주지 않으면 먹지않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차가 야운데역에 천천히 접어드니,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빈 플라스틱 병을 던져달라고 외쳐댄다. 가게에 가져가면 하나에 15세파를 쳐준다고 하니, 아이들에겐 심심찮은 군것질거리를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기도 하겠다. 12 야운데에 도착했다. 당초 예정시간보다 3시간 더 걸린 것이었는데,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샤워도 하고 나니, 그제서야 여행의 긴장이 좀 풀어진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눈을 부치지 못해서인지 잠이 몰려온다. 잠깐 잔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세 시간 정도가 지나갔다. 이미 늦은 오후인데 우선 빨래부터 하고 산책을 나섰다. 새삼 야운데의 일상이, 주위 이웃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저녁에는 여행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근처의 깨끗한 식당으로 가서 자축의 만찬을 들었다. 다음 여행까지는 또 야운데의 골목을 누비면서 길 위의 날들을 그리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