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4일(토) : 벨라보로
- 맑음, 벨라보(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싶은데 벌써 아침이다. 몸이 개운한 걸 보니 푹 잔 것만은 분명하다. 잠시 눈을 뜬 채로 누워 있으려니 닭 우는 소리, 장작 패는 소리 등이 들린다. 무척 가까운 데서 나는 것으로 봐서 호텔 바로 뒤편에 주민들이 사는 집이 있는 것 같다.
씻고 나서, 아침식사로 어제 먹다가 싸 온 닭고기와 쁠랑땡을 마저 먹었다. 사실은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를 주려고 했던 것인데, 카운터에 없길래 일부러 부르기도 뭣해서 방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식어서 어제만큼 맛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요기는 충분히 된다. 잠시 쉬면서 가지고 간 시집에서 시를 한 편 골라 읽었다. 어떤 시인은 아침에 빵 대신 시를 먹으라고 노래했는데, 내 안에도 어쩌면 시인이 될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짐은 그대로 둔 채 시내를 둘러보려고 나섰다. 주도로인 듯한 길은 포장되어 있는데 나머지는 모두 비포장으로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걷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편이다. 한참 가다보니 중앙모스크가 보이고, 그 옆에는 교실 가득히 남녀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마침 수업이 끝났는지 모두 나오길래 물어보니, 아랍어로 코란을 배우는 중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려고 하니, 저마다 먼저 먹으려고 손을 내밀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떤 아이는 손에 하나 쥐고서도 또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조금 큰 여자아이들은 제법 의젓한 티를 내기도 한다. 야운데에서 보던 아이들과는 외모에 약간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특히 여자아이들이 더 호리호리한 몸집에 맑고 검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어서 예쁘게 보인다.
이 곳에는 승용차택시가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보니, 모터사이클 밖에 없다고 하며 요금은 100세파라고 한다. 도시 규모가 그리 크지않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니까 그것마저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 보여서 이름이 붙여져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니 그냥 시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으니 굳이 이름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리라. 그 근처에서 길을 물어보려고 노점상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에게 말을 거니까, 내가 적고 있는 노트의 글씨를 보면서 마치 아랍어처럼 보인다고 한다. 글씨를 흘려 쓰는 편이긴 하지만 아랍어로 오인될 정도인가 싶어서 노트를 보니,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글자가 수두룩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급히 떠오르는 생각을 여러 나라 글자를 섞어서 쓰다 보니, 남이 보면 마치 암호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MUC 가판대에 있는 직원이 한 번 뽑고 가라고 권해오기도 한다. 모두들 한마디씩 걸어오는 폼이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보이는데, 악의 없이 걸어오는 그런 농담이 나도 싫지만은 않다. 이 곳에도 관공서들이 따로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시청, 경찰서, 법원 등이 밀집되어 있다. 제법 큰 규모의 카톨릭교회에는 부속학교도 딸려있어서, 많은 아이들이 근처에서 놀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제 도착했던 정류장 근처의 교차로 옆에 있는 작은 바에서 잠시 쉬면서 스프라이트를 하나 마시고 나니 갈증이 좀 가신다. 두시간 정도 걸었더니 어느 정도 도시 전체를 다 둘러보았다. 정류장 오른쪽은 진입부인데 특별히 볼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호텔로 오는 길에 소야를 500세파어치 샀다. 제법 많은 양인데 방에서 쉬면서 먹으니까 눈깜짝할 사이에 없어진다. 소고기를 은근한 장작불에 서서히 익히다 보니 기름이 완전히 빠져 담백한데, 매콤한 맛의 피망에 찍어서 먹으니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짐을 챙겨서 나오면서 팁으로 200세파를 베개 위에 두었다. 보통은 100세파씩 두는 편인데, 다음에 또 들르고 싶을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벨라보로 가는 버스는 호텔 바로 근처에서 표를 살 수 있는데,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요금도 1,000세파로 저렴한 편이다. 벨라보는 야운데와 은가운데레 사이에 놓여있는 철도의 중간 기착지인데,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야운데로 돌아갈 생각이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고, 타이어와 기름점검 등을 끝낸 후에 드디어 출발이다. 도로는 순탄해서 한시간 약간 지나서 벨라보로 들어섰다. 도시 진입로 양쪽으로 많은 수의 집들이 들어서있는데, 한국의 원두막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 지면에서 약간 올려져 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역으로 가서 야운데행 기차시간을 알아보니
밖으로 나서서 거리를 둘러보니, 많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베르뚜아에서는 우물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대체로 집집마다 우물이 있는 듯하고 물도 깨끗해 보였다. 한참 걷다가 원두막처럼 생긴 건물 아래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널판지를 길게 이은 의자도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햇볕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길 옆에 지어 놓은 것 같다. 아이들 몇이서 망고를 따려고 나무에 돌을 던지는 모습도 보인다. 다시 일어서서 시내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반달 모양의 표시가 지붕에 세워져 있는 작은 모스크도 보인다.
갈증도 재울 겸 해서 거리 옆에 있는 바에서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동네사람인 듯한 남자가 주인여자와 이야기 나누다가 내게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저것 물어온다. 야운데에서 그냥 이 곳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까, 마을 자랑을 한참 늘어 놓으면서 다음에 다시 오면 그 때는 공짜로 맥주를 주겠다고 약속까지 한다. 가게 뒤편에 있는 화장실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줘서 소변도 봤으니, 그만 일어나서 사나가강을 보러 갈 차례다.
길게 이어진 화물 열차 칸마다 돼지, 양이 가득 실려 있다. 야운데나 두알라로 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냄새가 고약하다. 역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니 그제서야 강물이 보인다. 이 곳은 강의 허리 부근인 셈인데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기슭에는 근처마을 주민들이 물을 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물을 식수로도 이용한다고 한다. 강 근처에서부터 안내해준 남자아이는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아이들과 외모나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어딘가 그늘이 느껴져서 물어 보니, 스위스인 아버지와 나이지리아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데 가출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서로 다른 국적의 부모 사이에 태어난 2세가 정체성이나 가정에서의 불화로 고민하는 것은 예민한 시기에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별로 해줄 말도 없어서 약간의 팁을 주고 헤어졌다.
어느새 저녁시간도 되고 해서 시장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도시 전체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데, 이 곳도 석유등을 밝히고 있다. 고등어 튀김, 밥, 감자튀김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어 뚝딱 해치웠다. 동그란 모양 그대로 저며서 살짝 튀긴 감자는 지금까지 본 것과는 달라서, 아마 영국음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기차시간까지는 아직 너댓 시간이 남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다. 낮에 극장을 봐 둔 곳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갔더니, 오늘은 영화 대신 콘서트가 있다고 해서 일단 안으로 들어섰다. 무대 전면의 스크린이 벽에 하얀 페인트칠을 해놓은 것이어서 재미있게 보인다. 또 형광등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 어두침침한데, 어차피 영화를 보려면 불을 끄게 될 것이니 나름대로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리허설과 무대설치 등으로 2시간 정도 지체하더니 열 시쯤에 겨우 시작을 알리는데 그냥 나와야 했다. 기차표는 열 시부터 끊을 수 있는데, 일찍 사지 않으면 나중에는 표가 동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2등석으로 샀는데 가격은 거리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다. 창구직원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대합실과 역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바닥에서 자는 사람,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사람, 맥주를 마시거나 무언가를 먹는 사람, 책을 보거나 아니면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 등 다들 별로 바쁜 기색은 느껴지지 않고 마치 공원에 나와서 쉬고 있는 듯 하다. 한밤중이라도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흘러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땅콩을 사먹기도 하면서 몸부림을 쳐봐도 좀처럼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도, 짐수레나 모터사이클 등을 이용해서 짐을 바리바리 싼 많은 사람들이 쏙쏙 도착하고 있다.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열차가 도착해주기만을 바랄 뿐인데, 시간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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