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6일(화) : 은가운데레에서
- 경비 9,875세파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에 여행안내책을 보니, 근교의 산 정상에 있는 호수가 볼 만하다고 소개되어 있어서 산책 겸 가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모터사이클 택시를 불러세워 티종Tison 호수에 가자고 하니, 도시를 벗어나서 잘 정비되어 있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린다. 공기도 맑고 옆으로는 가로수가 줄지어 있어서 기분도 좋다.
호수를 품고 있다는 산이 저만큼 보이는데, 비가 온 다음이라서인지 비포장 길이 진흙탕이 되어있어서 더 이상 바퀴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이다. 모터사이클을 근처의 인가에 맡기고 걸어서 가보려고 했지만 걸음도 옮기기 힘들만큼 길이 좋지 않다. 결국 산 아래 호수를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되돌아와야 했지만, 운전사가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성실하게 같이 움직여줘서 기분은 좋았다.
아침식사로는 숙소식당에 준비된 오믈렛, 빵,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세수를 하고 잠시 쉰 다음 역으로 나갔다. 오늘은 기차가 있으려니 했는데, 아직 사고복구가 끝나지 않았는지 언제 다시 운행될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오후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그 동안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큰 길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샛길로 접어드니 작은 시장이 서고 있었다. 여느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시골장에서도 흔히 있던 야바위꾼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쌈짓돈을 호리는 모습도 재미있다. 항공사 – CAMAIR - 사무실이 보이길래 비행편을 알아 보니, 바로 살 수는 있지만 예약은 안 된다고 한다. 요금이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
길을 건너고 카톨릭교회 앞을 지날 즈음부터 배가 아파오더니, 경찰서 근처에서는 화장실이 급하다. 마침 나오는 경찰에게 화장실을 물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났다. 여행 중에 만나는 설사는 가장 무서운 복병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오니 시내에서 벗어난 것인지 한적하다. 골목의 작은 모스크에는 마침 기도하는 시간인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아버지와 손자인 듯한 아이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느 집 문 앞에 내가 서 있다. 여행 중에 늘 긴장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곳에서는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
조금 아래쪽에는 라미도의 궁전이 있어서 들어가보았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둘러보는 느낌은 좋다. 가이드가 있어 여러 설명도 들을 수 있지만, 3,000세파라는 요금은 좀 비싼 것 같다.
바로 옆에는 전통가옥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앞쪽으로는 의자, 양탄자 등이 갖추어져 있는 거실이 전통미를 물씬 풍기며 한 동을 이루고 있고, 뒤편으로는 일반 주거구역으로 침실, 마구간 등이 각각 다른 건물로 들어서 있다. 낯선 외국인을 덤덤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편하다.
도로 한쪽에 버스회사 - Aliance Voyage – 가 보이길래, 차편을 알아볼 겸 들어가보았다. 내일 아침에 베르뚜아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는 하는데 길이 무척 좋지않다고 한다. 기차는 당분간 운행되기 힘들 것 같고, 내일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여야 한다. 생각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일단 모터사이클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더 묵겠다고 하니 숙박료를 4,000세파만 받겠다고 한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바로 지불하고, 방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 곳에도 사진관을 운영하는 교민이 한 분 계신다. 야운데에 계시는 다른 교민이 안부를 전해줄 것을 부탁도 하신 터라 가게로 찾아 뵙기로 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게로 가니, 사장님은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 준비해 간 음료수만 현지인 직원에게 전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도 거의 둘러보았고 갈 곳도 마땅찮다. 마침 건너편에 극장이 보여 앞으로 가서 자세히 보니, 곧 상영한다는데 요금도 325세파로 무척 싸다.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서 들어가니까, 비 오는 스크린에 인도영화가 흐르고 있다. 줄거리는 단순한데 여러 장르를 섞어놓아서 재미는 있다.
밖에 나오니 벌써 날이 저물었다. 사진관에 다시 가니까 사장님이 직원에게 들었다면서 반가이 맞아주신다. 인사만 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식사를 사주시겠다며 놓아주지 않으신다. 근처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생선요리,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숙소까지는 차로 태워주셔서 편하게 왔다.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하던 두 사람을 아프리카의 깊어가는 밤에 마주앉게 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내일은 버스를 타고서라도 떠나야겠다고 결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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