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하릴없이

그러한 2011. 7. 11. 14:48

 

하릴없이

 

- 이기와



오리를 데리고 개울가로 간다


오리를 안아보니 속이 빈 구름이다


구름이 허공에 잠기지 않는 건 마음이 없기 때문인가


무심(無心)한 오리가 개울물에 구름처럼 종이배처럼 떠 있다


오리의 유쾌한 목욕을 반나절 지켜보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쾌하게 지켜보며 혀를 찬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생을 가벼이 살아서야 되냐고


방울 달린 혀가 내 심심(深深)한 생각의 수면에 방울을 던져


소음의 파문을 일으킨다 


오리와 내가 저속(低俗)에 빠지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일


말고, 더 나은 비중(比重)의 일이란 어떤 것일까


아무리 무게를 실어 깊이 잠겨보려 해도


물은 공을 차듯 오리를 수심(水心) 밖으로 튕겨낸다


물과 놀아도 물에 젖지 않는 오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생을 가벼이 살아서야 되냐고

 

'[쉼-息] > 빈자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럴 수 있다면  (0) 2011.10.15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0) 2011.09.08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0) 2011.04.28
무명도   (0) 2011.04.22
시멘트   (0) 201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