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나누고 싶은 글

근심 걱정과 함께 살아가기

그러한 2013. 4. 2. 18:32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하였는데 늘그막에 구산 아래에 집을 한 채 빌렸다.

집 둘레는 휑뎅그렁하여 바람과 햇빛을 가릴 수도 없었다. 손님이 오면 늘 텃밭에 앉아서 맞았다.

10년을 경영하여 초당 한 채를 얽었는데 또 한 해가 가고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초당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면에 봉우리가 바싹 다가 있다.

초당에는 빈 땅이 없어서 대나 나무나 꽃 따위를 심지 않았으나 국화 몇 포기가 있어서 때가 되면 피었다.

굴뚝을 남창(南囱)이라 하고 뜰을 면가(眄柯)라 하고 문을 상관(常關)이라 불렀다.

초당 동쪽에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는데 역시 동리(東籬)라 하였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합하여 초당의 이름을 소우(消憂)라 하였는데 모두 도연명의 말을 따온 것이다.

근심은 마음의 병인데 풀어서 없어지게 하여 즐겁게 된다면 천지 만물이 모두 나에게는 즐거운 것이 된다.

 

어떤 손님이 물었다.

“사모할 만한 옛 성현이 한둘이 아닌데 그대는 초당의 창, 문, 뜰, 울타리를 모두 도연명의 말을 따와서 이름 붙였네.

그대는 어째서 오로지 도연명만 별나게 사모하는가?”

내가 말했다.

“사모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그와 같았을 뿐이네.

내가 가난한 것이 도연명과 같고, 초당에 책이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남쪽에 창이 있고 동쪽에 울타리가 있는 것이 도연명과 같고,

문이 늘 잠겨 있어서 쓸쓸한 것이 도연명과 같네. 그래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지 구차하게 사모하는 것이 아니네.”

“그대의 말은 그럴듯하네. 도연명은 시에서 ‘고[琴]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씻는다.’고 하였는데,

그대의 초당에는 책은 있으나 고가 없으니 어째서인가?”

“도연명에게는 무현금(無絃琴)이 있고 나에게는 무형금(無形琴)이 있으니 어찌 고가 없다고 하는가?”

손님이 웃고서 갔다.

 

 

- 김윤안(金允安, 1560~1622), 한국고전번역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