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나누고 싶은 글

한송이 팬지꽃이 부끄럽다

그러한 2013. 5. 2. 09:57

 

 

한송이 팬지꽃이 부끄럽다

 

 

물컵보다 조금 작은
비닐화분에 떠온 팬지꽃 한 포기를 얻어
작업장 창턱에 올려놓았습니다.

행복동의 영희가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줄 끊어진 기타를 치면서
머리에 꽂았던 팬지꽃.

화단의 맨 앞줄에나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