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아셨나요
그것은 실재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우선 '받아들인다'는 말을 이해해야만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무엇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쓴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바에 감응할 때에는 받아들이고 말고 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실재하는 바를 분명히 보지 못 할 때,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두려움이란 실재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아라는 것은 이 모든 반작용들과 반응들, 기억들, 희망, 억압, 좌절들이며,
꽉 막혀 있는 의식의 흐름일 뿐인데, 그것으로서 어떻게 그 너머로 갈 수 있겠습니까
막힘이나 장애가 없는 마음이 의식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 마음이 그 얼마나 즐거운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몸이 완벽한 상태일 때 거기에 참 좋구나 하는,
그 어떤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단 말입니다.
마음에 그 어떤 장애도 없이 완전히 자유로울 때,
'나'라는 인식의 중심이 사라졌을 때, 거기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다
는 것을 여러분들은 모르고 있습니까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상태를 경험하지 못 했습니까
분명히 우리들은 전부 다 그런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자아를 이해하고 자유로와 진다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온전히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관찰했을 때이며,
또 그렇게 되려면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활동을 다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생각이라는 것의 핵심이거든요. 욕망이라는 것은 생각과 다르지 않아요.
그것을 정당화한다거나 비난한다거나 눌러버린다거나 하지 않고
제대로 다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을 다 이해한다면,
그때는 인간이 자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자기로부터의 혁명, 두려움 中
우리는 흔히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쓰곤 합니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님의 말씀대로 그것이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면
그것은 이미 사실이 아닌 거지요.
전체적으로 완전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욕망때문에 일어나는 활동을 다 이해해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욕망때문에 일어나는 활동이라...
그것을 정당화, 비난, 억압 없이 관찰하는 문제가 곧 이해가 되며
그것으로 자아라는 한계를 너머
'나'라는 인식의 중심이 사라진 자유,
그 막힘없고 장애없는 자유의 즐거움을 느껴야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런 막힘과 장애가 없는 마음이 얼마나 좋구나...하는 즐거움인지...
말씀을 하시네요.
막힘없고 걸림 없는 즐거움이라...
'나'란 중심에서 나오는 욕망의 활동이 그쳐버린 즐거움이라...
듣는 것 만으로도 참...좋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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