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K)/단정님 글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사랑이 있을 때까지

그러한 2008. 4. 29. 13:09

 

 우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마음이 탐내는 목표와 같은 '사랑에 수단이 없다는 것' 을 넓고 깊게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정말로 깊이 이해할 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에 대한 접촉 없이는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행복은 없다.

그대가 그 축복을 수용하지 않고 내가 그렇지 못할 경우,
그대와 나는 자연적으로 갈등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그대는 갈등 속에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으로 자신을 폐쇄할 것이다.

슬픔은 기쁨처럼 독단적이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랑이 있을 때 까지 관계는 고통이다.

 

그 사랑의 축복이 있으면 그대는 내가 무엇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는 나의 행동에 따라서 사랑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떤 속임수를 부리는 곳에서는 그대와 나는 분리되어 있다.

 

                 - 크리슈나무르티의 관계속의 사랑 中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사랑이 있을때...

그때 비로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것, 어떤 힘, 어떤 축복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며

그때 사랑은 '무엇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전체성을 띄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네요.

 

음... 늘 생각하는 거지만,

참... 크리슈나무르티님의 말씀은 아름답습니다. ^^

 

암튼,

어떤 목표, 어떤 수단,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내가 만든 그 어떤 것에의해서도

사랑을 존재하게끔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 자신이 그 관계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용서하려고

노력과 궁리를 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관계 속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사랑이며, 나의 자비이며, 나의 용서가 되는 노력이지요.

 

그것이 관계 속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의 사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넓고 깊게 자각하는 것이

역시 제 생각에도 가장 큰 어려움 같습니다.

 

그것을 넓고 깊게 자각할 때,

더 이상 마음의 속임수가 자리잡지 못하는 사랑의 축복이 오며

내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동시에 정화를 요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그 어떤 것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나'가 자리를 비워줘야하는 거겠지요.

그래서 내면의 텅빔, 청소, 정화....를 위한 넓고 깊은 자각이 필요한가봅니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일지는.... 모르죠. ^^

이미 '나'가 자리를 완전히 비워줬다면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 그대로 알려하는 순간, 오히려 모르게 되는 어떤 것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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