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슬픔의 강렬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그 어떤 움직임에 의해서도, 그 강렬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관찰도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에너지의 강렬함이 있고, 또 그것과 전적으로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어떤 행위를 취한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제가 정확하게 말했습니까? R: 그것은 사람이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는 갖가지 행위만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떻게 내가 슬픔과 함께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묻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P: 슬픔이 일어나서 선생을 가득 채웁니다. 그것이 매우 깊은 것일 때, 그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거기에서 행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슬픔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한껏 피어오를 수 있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K: 실제로 선생께서 슬픔에 가득 찼다면, 선생의 전존재가 슬픔이라고 하는 그 비범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졌다면, 그러면 거기에는 도망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향일지라도 도망가는 순간에는 그 에너지가 사라져 버립니다. 선생께서는 슬픔이라고 하는 그 에너지로 완벽하게 가득 찼습니까? 아니면 슬픔이 선생 속 어느 부분에 있으며, 달아날 틈이 있는 선생의 일부입니까? R: 제 생각에는 항상 달아날 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 존재를 채우는 어떤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두려움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K: 그러므로 슬픔이 선생의 존재를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R: 예, 그건 그렇습니다. K: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선생께서는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을 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두려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슬픔은 잊어 먹고 두려움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통찰력으로의 탐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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