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떠나기, 정착하기
봉사단원으로 카메룬에 파견되어 현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일과 생각들을 날자 순으로 정리해 보았다. 비교적 사실을 중심으로 적었는데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는 유용한 내용이 될지도 모르겠다.
출국 : 1999년 7월 19일(월)
전 날은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 국제협력연수센터(ICTC)에서 묵었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공항터미널까지 가서 다시 리무진버스로 갈아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식당에서 갈비탕을 주문해서 같이 파견되는 H단원과 먹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먹긴 했지만 무척 비싸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다. 내가 밥값을 계산한 만큼 H단원에게 라면을 좀 사서 짐에 챙기라고 했더니 공항매점에는 라면이 없다고 한다. 아쉽기도 하고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2년 치 먹을 한국음식을 다 준비하지 못할 바에야 처음부터 바로 현지음식에 적응해버리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진 돈 중에서 500프랑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다시 계좌에 이체했다. 현지에 가면 매월 지급되는 생활비가 있으니까, 가는 중에 쓸 용돈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잔돈으로는 생수 작은 병과 껌 두 통을 샀다.
탑승 수속을 하다 보니 내 개인 짐이 너무 많다. 큰 이민 가방 두 개가 벌써 38Kg인데 배낭 두 개가 더 있다. 옷가지가 든 가방은 국제우편으로 부칠까 하다가 짐을 일부 나눠서 H단원 짐에 옮겨 담았다. 복잡한 가운데 가방을 마구 풀어 헤치는 해프닝을 끝내고 나니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해서 다른 나라로 파견되는 단원들 여섯 명과 함께 프랑스 파리까지 8,943Km의 거리를 13 시간 동안 날아갔다. 비행 편 연계에 의해서 파리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한인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파리 시내를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첫 날 : 1999년 7월 20일(화)
아침에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7월 말인데 벌써 바람이 무척 차고 서늘한 공기가 살갗에 느껴지는 것이 한국과 기후도 많이 다른 것 같았다. 한낮에는 무척 더워서 일교차가 크다고 한다.
공항까지 같이 차를 타고 간 다른 나라로 파견되는 단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고, 앞으로 활동하게 될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Yaoundé로 가는 비행기는 어느새 지중해를 지나고 있다. 온통 황토색이고 도무지 생물이 살 것 같지 않은 끝없이 펼쳐지는 사하라 사막을 내려보고 있자니, 비로소 아프리카로 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7시간 반 정도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 H단원은 잘 자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애꿎은 포도주, 샴페인만 계속 축 내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야운데 시내는 온통 숲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숲 사이로 드문드문 집이 보이고 도로는 마치 가는 선을 그어 놓은 듯한 매우 전원적인 풍경이다. 언뜻 보기에 도로가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내려서 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은시말렌Nsimalen 공항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현대적인 시설이었고, 운영도 나름대로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파견의사로 활동하시면서 봉사단원 현지지원요원을 맡고 계신 K박사님과 협력의사로 활동중인 닥터C가 마중 나와 도와주셔서 입국수속은 별 어려움 없이 끝났다.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보니, 차량진입개폐기를 사람이 직접 들었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현대적인 공항시설과 대비되어 인상적이다. 최첨단 시설과 일체를 배제한 물리력의 조화가 카메룬의 현재 모습인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알아볼 일이다.
미리 예약해 두신 호텔 – Hôtel Grand moulin - 에 짐을 풀고, K박사님 댁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를 같이 나누었다. 아프리카에까지 와서 이렇게 황송한(!) 대접을 받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감개무량하다. 전임단원으로 활동을 끝낸 후에 현지에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T씨 내외도 자리를 같이해서 도움이 되는 여러 경험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2년간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호텔로 오는 길의 밤 풍경이 새삼 정겹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 실제 활동기관에 근무하기 전까지 한 달 정도의 기간은 “현지 적응 훈련” 이 준비되어 있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말 그대로 현지에 적응해서 씩씩하게 살아나갈 힘이 생기리라 기대하며 스폰지 매트리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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