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성모승천일 휴무, 명예영사 주최 칵테일 파티

그러한 2008. 7. 4. 14:03

 

성모승천일 휴무 : 1999 8 16()

 

현지에 와서 가장 먼저 맞은 공휴일은 성모승천일이었다. 매년 8 15일로 정해져 있는데 올해는 마침 일요일이다. 휴일을 하루 잃었다고 아쉬워하면서 모처럼 갔던 크리비에서 이내 올 수 밖에 없었다.

여느 때처럼 학원으로 가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는데 운전사인 아우두 씨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더 늦기 전에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갔더니 학원은 텅 비어 있었다. 임시공휴일로 공포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강사가 월요일에 보자고 했던 지라 학원수업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허탈하게 다시 집으로 오니, 아우두 씨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다. 몸이 아파서 늦게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휴일이라서 집에 있다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나온 것 같다. 남들이 모두 쉬는 휴일이고 아프다고도 하니 1,000세파를 주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하고 위로 올라왔다.

모처럼의 휴일인데 그냥 보내기가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꼭꼭 싸온 꽹과리를 들고 야운데회의장(Palais des Congrès)으로 산책을 나섰다. 마침 사람도 별로 없어서 잘됐다 싶어 회의장 앞의 탁 트인 곳에 앉아서 열심히 사물놀이 영남가락을 두드렸더니, 예상했던 대로 안에서 관리인인 듯한 사람이 나와서 시끄러우니 가라고 한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짱짱한 쇳소리를 들으니 온 몸을 감싸는 후련함이 느껴진다.

오후에는 야운데에서 사업을 하는 젊은 교민 두 사람이 찾아와서, 미국인학교(American School)에 가서 수영, 테니스, 농구 등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스포츠를 별로 즐기는 편도 아니고, 그 곳이 가난한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아니어서 거부감도 들었지만, 현지의 다양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한번 정도는 가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따라 나섰다. 미국인학교에 딸린 시설이어서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관리도 잘 되는 편인데, 주로 외국인들이나 현지의 부유층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저녁때는 닥터C의 집으로 가서 두 사람이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닥터C는 한국에서 단기로 온 의료선교단과 동부지역에서 의료활동 중이고 부인과 어머니만 계셔서 안부차 들른 것이다. 나도 좀 시일이 지나면 지방 여러 곳을 돌아볼 기회가 생기리라 위로하면서, 당장은 한 젓가락의 라면이라도 더 확보하는 게 급하다. 이 곳에서 라면은 말 그대로 별식이다.

 

명예영사 주최 칵테일 파티 : 1999 8 21()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서, 다보 씨의 저택에서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워낙은 8 15일로 계획했었지만, 한인회 총회와 겹치는 것을 피하고 현지의 휴가철이 이 즈음 끝나는 것을 고려해서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카메룬에 거주하는 많은 교민들과 각국 외교관, 주재원, 현지의 유력 인사들 등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런 종류의 모임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현지인, 외국인들과도 격의 없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후반부에는 노래 반주기를 설치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외국인들은 조금은 당혹해 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교민들은 당신들의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오랜 이국생활에 절절히 배인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 해서 가슴 한 쪽이 저려왔다.

초대된 손님 중에는 외무부에서 온 사람도 다수 있어서, 어느 정도 기관의 분위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내일만 지나면 다음 주부터 근무지인 외무부로 가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현지훈련기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서 아무래도 이 파티는 기억에 오래 자리잡을 것 같다. 샴페인을 기울이면서 속으로 건배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