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2일(토) : 쿰보로
- 화창, 쿰보(
어렴풋이 들려오는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느즈막히 일어났다. 아마 호텔 뒤쪽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달게 잠을 잔 탓인지 몸은 개운하다. 씻으려고 하니 물이 나오지 않아 물어 보니, 이른 아침에는 나왔는데 아마 10시경에 다시 나올 거라고 한다. 지방으로 올수록 생활용수가 부족해서 제한급수를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늘은 씻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냥 주위를 둘러보러 나섰다.
바멘다는 오늘날까지 카메룬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영어사용지역의 중심도시라서 그런지 영국적인 양식을 많이 풍기고 있다. 건물도 거리도 심지어 사람들도, 프랑스적인 성향이 강한 야운데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주 도로가 있고, 그 주위를 감싸듯이 원형으로 도로가 나 있었다. 외곽은 교외지역인데 걸어서 가기에는 한참 걸리는 거리로 보인다. 우선은 식사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거리의 간이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차, 오믈렛, 빵을 주문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니 기분도 좋아진다. 야운데에서 주로 먹던 바게뜨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식빵을 보니 반가운 생각도 든다. 식빵이 우리 음식도 아니건만 영어사용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이 곳의 사소한 것들마저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백인 아주머니 – 혹은 할머니 - 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살짝 윙크를 해주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호텔 뒤쪽을 보니 먼 발치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아침에 듣던 물소리는 생각했던 대로 작은 개울이었는데, 물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호텔로 왔지만 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배낭이 좀 무겁긴 하지만 그냥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아까 봐두었던 거리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본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걷다가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다음 목적지는 쿰보Kumbo이다.
쿰보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않아서인지 요금도 저렴하다.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곳이다. 지도를 보니 북서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바멘다에서 가깝고, 해발 2,000미터 정도의 고원도시라고 여행안내서에 약간 소개가 되어 있길래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별 목적 없이 떠도는 여행이니 이런 여유도 부릴 수 있는 것 같아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시껄벅적하지 않고 동네 옆 공터 같은 곳에 차만 몇 대 서 있는 정류장이 마음에 든다. 차들 사이로 자그마한 아이가 손으로 굴렁쇠를 굴리며 놀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게 보인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70년대까지는 아마 굴렁쇠를 가지고 놀았을 텐데 어느새 사라지고, 최근에는 일부 단체들에서 옛날 놀이를 소개할 때 한 번씩 시범으로만 보이는 실정이 안타깝다. 컴퓨터 게임을 몰라도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아이는 굴렁쇠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저런 아이들이 지금의 동심을 계속 간직하고 미래에 이 나라를 굴렁쇠 굴리듯 잘 이끌어 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 편에서는 버스회사직원이 요금을 알려주면서, 승객이 비싸다고 하니까 "This is Business." 라고 말하는 것이 들린다. 특히 영어사용지역에 접어들어서 가격을 흥정하는 상황에서 많이 들은 말이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의 긴 시간을 전송객들이 같이 기다리다가, 출발하기 바로 전까지 차창을 통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이 사람들은 아직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않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번에는 운전사를 포함해서 12명이 전체 인원이다.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좌석의 정원을 지키는 경우를 거의 본 일이 없고 늘 콩나물시루 같은 차만 타다 보니, 오히려 뭔가 빠진 듯 허전함 마저 든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몇 명을 더 태우기 위해서였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좌우로 펼쳐진 목초지에는 소떼와 말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그 사이로는 여러 모양으로 생겨난 폭포들이 곡선을 이루면서 아래로 물을 쏟고 있다. 중간에 자키리Jakiri에 도착해서는 출출한 김에 소야 2개를 사 먹기도 했다. 달리면서 마을을 지날 때 가끔 기사가 차창으로 편지를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닌 듯 한데, 주소에 적힌 사람에게 전달해 주기를 요구하고, 받아 든 사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버스가 정기적으로 드나드니까 자연스럽게 우편배달부 역할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지역 소식지를 배달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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