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쿰보로 - 2

그러한 2008. 7. 10. 13:42

 

세시 반쯤에 쿰보에 도착했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언덕진 초원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더 싱그럽게 느껴진다. 쿰보는 반소Banso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쿰보는 법정동이고, 반소는 행정동 명칭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우선은 숙소를 찾아 나섰다. 경비도 아낄 겸해서 침례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숙소(BBH Rest House)를 찾아갔다. 주말이라서인지 담당자는 없고 미국인 남녀 의료요원 2명이 자신들은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옆에 있는 사무실로 가니, 한 남자가 야운데에서 나를 본 적이 있다며 아는 체를 한다. 아내가 야운데의 영국문화원 도서관 직원인데 그 곳에서 보았다며, 담당직원을 찾아주려고 애써준다. 방이 없어 결국은 포기하고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의 가르댕이 알려준 다른 숙소에도 방이 없어서, 택시를 2번 갈아타서야 겨우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호텔 이름 - Ring Road Travellers' Inn – 의 유래를 물어보니, 바멘다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나 있는 250Km 정도의 도로를 Ring Road 라고 부른다고 한다. 쿰보 같은 작은 도시 몇 개를 연결하고 있는데, 경치가 아름답고 공기가 맑아서 트랙킹을 목적으로 한 관광객이 심심찮게 찾는다고 한다. 그런 관광객들을 위한 곳이라니 더 마음에 드는데, 시설에 비해 요금도 저렴하다.

 

짐을 풀고 약간 쉰 다음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언덕 중간쯤에 있는 성당이었다. 본당 주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 앞 마당에서 축구 하는 아이들로 활기찬 분위기가 넘친다. 성당에 딸린 부속학교도 보이는데 아마 축구하는 아이들은 이 학교에 다니는 듯하다. 뒤쪽에는 묘지도 보이는데, 예쁘게 단장되어 있어서 마치 작은 공원에 온 듯 했다.

성당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처음에 숙소를 찾기 위해 들렀던 병원이 나오는데, 정식이름은 Banso Baptist Hospital(BBH)이다. 침례교 단체의 미국인 의사가 설립했다고 하는데, 규모 있는 시설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외딴 곳에 이렇게 병상수도 많은 큰 규모의 병원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 요양을 필요로 하는 환자라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부속고아원도 있어서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축구하고 있는 아이들 중의 대부분은 이 고아원 원생이라고 한다.

직원들을 위한 숙소가 길 건너편에 마련되어 있는데 아담한 규모이다. 야운데에서 가끔 본 적이 있는 미국 선교단체인 SIL의 차가 서 있는 걸로 봐서 아마 두 기관은 같은 단체에 속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좀 더 올라가면 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있다. 그리 높지 않은 저녁 무렵의 산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초입까지만 갔다가 내려 오는 길에 보니, 제법 규모 있는 서점이 몇 개 보이는데 종교서적과 아이들 책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마을 아래쪽으로는 주민들이 사는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부족의 전통건물도 몇 개 눈에 띈다. 이 곳 부족의 우두머리는 폰Fon이라고 불리는데 그를 위한 일종의 궁전이 보인다. 주주라고 불리는 주술사를 위한 건물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들이 모여 음료수를 마시며 쉬거나 회의장소로 쓰이는 건물도 둘러보았다. 이런 건물들은 지금도 일부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전통으로서의 상징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지금도 폰의 지위는 계승되고 있지만 주민들을 통치하고 있지는 않고 상징적인 위치에서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다. 회교사원인 모스크 옆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예쁘게 보이고, 사람들도 어느 곳보다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살고 있는 환경이 심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슬슬 걸어 올라왔다.

 

어느새 저녁때가 되었는데, 둘러봐도 왠지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구운 고등어가 있어서 고맙다. 여행하면서 어디에서나 구운 고등어를 볼 수 있었는데, 한국만큼이나 카메룬에서도 고등어는 서민들에게 가까운 생선인 것 같다. 근처의 바에서 빵과 같이 고등어를 열심히 발라먹고 있는데, 마을 아가씨가 친구 하자며 말을 걸어온다. 인근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데 방학이라서 집에 와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대화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상 진행해서는 곤란할 것 같아서,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처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지인들은 블랑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자주 본다.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호텔로 와서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리고, 그 때문인지 전기가 왔다갔다 한다. 그래도 이번 여행 중에는 처음으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온 몸이 가뿐하다. 비가 창을 통해 방으로 스미기도 했는데, 산지인데다 날씨 탓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 좀 쌀쌀한 느낌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쉬면서 책을 읽다가 열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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