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0년 9월 3일(일) : 품반으로 - 1

그러한 2008. 7. 10. 13:43

 

2000 9 3() : 품반으로

 

 - 화창, 품반(2:10, 버스), 경비 10,075세파

 

낮 동안의 좋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밤 늦도록 사람들이 노래하는 소리에 잠을 설쳤고, 새벽에는 거리의 가게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대는 바람에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세수하고 여장을 꾸린 다음, 버스 시간을 알아 볼 겸 해서 아침산책을 나섰다.

어제 밖에서만 보았던 폰의 궁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마침 근처에 있던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폰도 교회에 갔다고 한다. 전면에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는 공간이 있고, 뒤쪽으로는 부인들이 사는 별채가 몇 개 있다고 하는데 금지구역이었다. 폰과 그의 궁전이 아직도 존경받고 있다는 것은, 안내해 준 현지인이 신발을 벗고 옷깃을 여미는 태도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는 문 양쪽에 새겨진 나무 조각이나 천정에 거미 문양이 많이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거미를 신성시하는 듯 하였는데, 거미는 지혜를 상징하고 이들이 속한 바밀레케Bamiléké족이 공통적으로 숭배하는 것임을 나중에 품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건물에 새겨진 나무의 조각 중에는 악기, 사람의 머리, 술을 든 사람도 보인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품반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품반은 카메룬에서 대표적인 왕조를 열었던 바문족의 왕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왕궁 건물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지금도 상징적으로 계승되는 왕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에 새겨진 무늬를 보니 전통 그림이나 조각에서 따온 것이 많고, 폰의 궁전에서 본 것 같은 거미 모양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일교차가 큰 편인지 밤에는 다소 춥더니 아직 9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더위가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이 악수할 때 보니 연소자가 손을 받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바밀레케족은 특히 조상을 극진히 모시는 등 동양적인 풍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짐을 가지고 나와서 차에 승객이 얼마나 찼나 물어보니, 이미 다섯 자리가 차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더 차면 출발한다고 한다. 표를 살 때 내가 3번째였으니까, 1시간 10분 동안 겨우 2명이 더 표를 산 것이다. 네 자리라는 것도 전적으로 믿을 것이 못 되는 만큼, 차가 떠나기 전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열시가 지나 차가 움직였는데,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고 조각공예품으로 보이는 승객의 짐을 싣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정류장으로 오니 이번에는 다른 차로 갈아 타라고 한다. 언제쯤 출발할 것인지, 분명한 것은 아직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소야를 하나 사먹었다. 카메룬 어디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좋은 먹거리이다.

 

열 한시 반, 드디어 출발이다. 이내 멈춘다 싶더니 미리 예약해 둔 가족인 듯한 승객 일행을 태우느라 얼마간 지체한다. 하지만 출발하기까지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품반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의 황톳길인데, 주위 경관은 좋은 편이고 간간이 마을을 볼 수도 있다. 흙과 옥수수대로 만든 벽, 마찬가지로 옥수수대로 이은 지붕을 가진 사각이나 원형의 집들이 길을 따라 점점이 늘어서 있다. 옥수수를 수확해서 나르는 남자들과 마당에 널어 말리는 여인들의 모습도 평화로워 보인다.

움푹 패인 도로를 우회하기도 하고, 차 바닥의 구멍 뚫린 틈 사이로 들어오는 흙먼지를 엄청나게 마셔가며, 멈춰버린 택시의 승객들을 태우느라 자리를 좁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여행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경찰 검문으로 한동안 차를 멈추게 되었는데, 승객 한 사람의 신분증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 문제였다. 운전사가 내려서 경찰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차 안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이 곳이 영어사용지역이기 때문에 프랑스어사용지역 출신인 경찰이 쓸데없이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제법 오래 지체하고 난 뒤, 운전사가 약간의 돈을 줘서 해결한 듯 했다. 승객들은 여전히 그들이 영어사용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공식적으로 통합국가를 이룬지 이미 30년이 넘었는데 아직 그런 의식이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그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뜻이리라.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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