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품반으로 - 2

그러한 2008. 7. 10. 13:44

 

품반에 도착했을 때는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몰골이지만, 그래도 날씨가 맑아서 기분은 좋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도 아닌데, 골목으로 차를 몰아서 승객의 집 마당까지 태워주는 인심이 정겹다. 가족들과 기르는 개까지 나와서 반가이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차 안에 있는 외국인에게 건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숙소를 찾아가 보니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 보았다. 호텔 이름 - Beau Regard – 만으로도 이 곳은 프랑스어 사용지역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이 많이 낡았고 관리도 잘 되고있지 않는듯한 것에 비해 요금은 비싼 편이다. 관광지 유세라도 하는 것일까? 요금을 지불하고 얼마정도 받을 거스름돈이 남았는데, 나중에 준다고 했지만 결국 받지는 못했다.

 

거리에 나서 보니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뜨거운 때인 세시 반이니 더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수와 길에서 파는 소야를 사서 아침에 먹다 남은 빵과 같이 먹었다. 점심식사인 셈인데 거리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먹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보이며 지나간다. 사람들의 그런 표정을 보는 나도 재미있다.

걸어가다 보니 모스크가 보이는데, 마침 기도하는 시간인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 호기심이 일어 담 안으로 들어서니 남녀 신자들이 회당 안에서 이미 무릎을 꿇고 있는 중이다. 바깥의 벤치에 앉아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기도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마음도 경건해지는 듯하다. 하루에 다섯번 메카를 향해 머리를 숙이는 그들의 기도는, 외형적인 형식으로 그치지 않고 삶을 더 엄정하게 바라보는 깨어있는 의식으로까지 느껴진다.

박물관으로 운영중인 바문왕궁(Palais de Roi)은 모스크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요금은 2,000세파로 좀 비싼 편인데, 문화유산보존에 쓰여진다고 생각하니 그리 아깝지도 않다. 관람객 중에 한 사람이 입장권을 왼손으로 건네니까 직원이 뭐라고 하며 주의를 주고, 관람객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마 왼손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종교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1층에 놓여있는 왕좌 양쪽의 대형 상아는 높이가 2.6미터나 된다. 큰 북 하나와 중간 크기의 북 2개도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지혜를 상징하는 거미, 바문족을 지켜준다는 두 머리 뱀, 위험을 알릴 때 사용한다는 굽은 모양 종(Double-Cloche)이 바문족의 대표적인 상징이며, 각종 그림이나 조각, 옷감 등의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부는 나름대로 규모도 있고 유품도 많은 편인데 관리가 잘 되고 있지는 않는 듯 했다. 나무침대 위에는 짐승의 배설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안내인이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안내장 하나도 비치되어 있지않은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현재 왕은 19대까지 계승되고 있는데, 17대 왕 때에는 자체문자를 만들어서 지금도 박물관 옆에 있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농사를 위해 만들었다는 달력도 볼 수 있었는데, 원을 12등분한 종이 위에 농사와 관련된 정보를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커서 박물관 앞 마당을 한바퀴 돌고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작은 시장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있다. 길을 물어 보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들의 태도를, 왕국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주관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골목길에서는 여러 명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근처에 칼로 끊고 도망갈 만한 사내아이는 보이지 않는데, 몇 번이나 끊어진 줄을 묶은 것인지 군데군데 매듭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식사 때가 되어서 미리 봐둔 작은 식당으로 찾아 들었다. 약식정식메뉴(Demi Menu Complet)라고 적힌 것이 양이나 가격면에서 적당한 것 같은데, 전채나 디저트는 빼고 요리만 먹는 것이다. 간단한 것을 주문한 것인데도 밥, 스파게티, , 고기 등에 소스를 곁들인 것이 접시에 수북하다. 맛은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 반정도 밖에 먹지 못하고 남겨야 했다. 아보카, 상추, 토마토, 양파, 고기, 오믈렛 등이 담겨있는 전채까지 시켰으면 미안하고 죄스러울 뻔했다. 내친 김에 커피도 주문해서 마시고 나니, 오랜만에 제대로 식사를 한 것 같아 포만감과 행복감이 교차한다. 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특별한 것이다.

호텔에 돌아와서 쉬면서 여행 경비와 일정을 맞추어 보았다. 야운데에서 며칠 쉬고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고려하면 사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인데, 둘러 볼 곳은 많고 휴가일수는 너무 짧다! 경비는 처음 생각한 것에서 조금 남길 수도 있겠는데, 야운데를 지키고 있는 단원들에게 저녁을 한 번 살 정도는 될지 모르겠다.

방은 세면대가 너무 높아서 발을 제대로 올리지 못할 정도인 것을 빼고는, 그런대로 하룻밤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고 대체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건물 벽과 방의 옷걸이, 커튼걸이 등에 새겨진 바문족의 조각이나 그림장식도 인상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쉬다가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비가 너무 쏟아져 잠을 설쳤다.

 

'[삶-食] > 새우의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0년 9월 5일(화) : 바팡으로  (0) 2008.07.10
2000년 9월 4일(월) : 바푸삼으로  (0) 2008.07.10
2000년 9월 3일(일) : 품반으로 - 1  (0) 2008.07.10
쿰보로 - 2  (0) 2008.07.10
2000년 9월 2일(토) : 쿰보로 - 1  (0)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