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5일(화) : 바팡으로
- 맑음, 바팡(
세시 반에 눈을 떴다. 가만히 있으니 옆 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하다. 저 소리 때문에 깬 것일까? 갑자기, 내가 바문족의 왕이 되어 전쟁터에서 큰 북에 올라 타고 호령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출출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싶어 바나나 2개를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잠을 설쳤는데도 다행히 일찍 일어났다. 대충 씻은 다음 짐은 그냥 두고 단출하게 호텔을 나섰다. 근처에 있는 반준Bandjoun을 둘러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다. 카메룬의 대표적인 종족은 바밀레케인데, 반준은 그들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오늘날 카메룬 전체의 경제는 사실상 거의 바밀레케족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비옥한 이 지역의 토양에서 나오는 농산물과 단단한 종족 내 결속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반준에 위치한 족장의 근거지인 쉐페리Chefferie가 있다.
택시는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아침은 거르더라도 생수를 사는 것은 빼먹지 않는다. 반준에 도착해서 다시 쉐페리로 가는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15분 정도 달린 후 아직 택시요금을 지불하기도 전에 정문에 있던 안내인이 다가와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반갑게 맞아준다. 같이 걸어가며 정면을 보니, 회의장으로 쓰이던 큰 건물이 대체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왼편으로도 전통적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작은 가옥이 몇 채 보이는데, 풀로 이은 지붕, 흙과 대나무로 반죽해서 만든 벽, 외부에 드러나 있는 기둥에 새겨진 조각 등이 인상적이다. 오른쪽 안으로는 현재 족장(Chef)의 아내들과 아이들이 거주하는 집이 여러 채 지어져 있는데, 양철로 덮여있는 뾰족한 지붕이 그들의 위세를 자랑하는 듯 하다.
안내인이 진지하게 주 건물 외부의 나무기둥에 새겨져 있는 조각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내부에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진 터진 공간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동물의 해골과 뼈를 벽에 붙여 둔 것도 보인다. 흙과 대나무를 이용해서 벽면을 3중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밖으로 나와 마당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박물관이 보인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한 많은 유물들을 모아 둔 곳인데, 잘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마의 머리, 발, 가죽이 박제가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고, 벽에는 코끼리 이빨, “정의”를 상징한다는 거북이의 박제를 위시한 여러 들짐승, 날짐승의 박제가 장식하고 있다. 족장이 의식을 거행할 때 쓰는 많은 기구들도 볼 수 있다.
머리도 아프고 속도 좀 거북해져서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조금 낫다. 바깥으로 나와서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청동으로 만든 사자상과 말을 타고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족장의 상이 매끈하게 주조되어 있다. 각각 카메룬과 반준의 바밀레케 종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인데, 그들 종족이 이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진하게 느껴진다.
가족들이 거주하는 구역을 방문해 보고 싶었는데, 족장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서 절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입장료로 1,000세파, 다소 적다고 불평하는 듯 했지만 안내인에게는 300세파를 지불하고 정문을 나서는데, 십 여명 정도 되는 여인들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연령대가 다양해 보이는데 모두 족장의 부인이라고 한다.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10분 정도 걸어 나오는 길은 호젓한 시골길이어서 상쾌한 느낌이다.
올 때와는 역순으로 되짚어 바푸삼으로 향했다. 무심코 택시 창으로 내다 보니 바푸삼 쉐페리를 가리키는 팻말이 보이길래 들어가보기로 했다. 반준에 있는 것이 바밀레케 전체를 대표하는 곳이라면, 이 곳은 그 중의 일파인 바푸삼을 대표하는 것이다.
안내인이 따로 보이지 않아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로 갔더니, 안에서 누군가 나와서 대뜸 입장료부터 내라고 한다. 사진을 촬영하지 않는 요금으로 500세파를 지불했다. 건물의 뾰족한 지붕 위에 세워진 화살촉 모양의 첨표는, 이 건물이 쉐페리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조금 낮은 건물들 지붕에도 다양한 모양의 첨표를 볼 수 있는데 주로 표범 등의 동물이 많이 보인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반준에서와 같은 규모의 큰 주건물이 보인다. 외부에 세워진 기둥이 나무인 반준과는 다르게 이곳은 석조 재질이었는데 시멘트로 보이기도 한다. 여러 동물과 사람이 조각되어 있는데 반준에 비해서는 조악해 보인다. 벽면과 지붕은 마찬가지로 대나무와 풀로 엮어져 있다. 박물관에도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를 요구해서 그냥 나왔다. 나중에는 아주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보니 처음부터 정해진 입장료가 있는 것 같지 않다.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와서, 간단히 식사하려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오믈렛, 빵, 커피를 주문했는데 맛이 괜찮다. 내부도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다. 조금만 큰 도시로 나와도 이렇게 운치 있는 곳에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이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 나와서 바팡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택시를 이용해서 정류장으로 갔다. 바팡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어서 요금이 1,000세파이다. 운전사 옆자리는 이미 다른 승객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배낭 때문에 불편하니 자리를 좀 양보해 달라고 부탁하니까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잠시 후에 보니 운전사를 제외하고도 세 사람이 더 타야 할 상황이어서, 조금 불안(?)하지만 배낭은 뒷문 쪽에 싣고 다시 자리를 바꿨다. 바로 뒷자리를 보니 네 사람이 앉게 되어 있는 자리에 여섯 사람이 끼어 앉아있다.
한시간 정도 기다려서 차는 출발했다. 대부분이 포장된 도로라서, 콩나물 시루 같은 차도 견딜만하다. 바팡에 거의 이르러서 운전사가 무슨 배짱인지 경찰 검문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린다. 경찰차가 쫓아와서 결국 멈췄는데 운전사가 내려서 열심히 뭔가를 설명했다. 승객들 말로는 아마 500세파 이상은 쥐여줘야 할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돈을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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