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0년 9월 4일(월) : 바푸삼으로

그러한 2008. 7. 10. 13:44

 

2000 9 4() : 바푸삼으로

 

- 조금 흐림, 바푸삼(1:00, 부쉬택시), 경비 18,365세파

 

어제 일찍 잔 때문인지 일찍 일어나도 몸은 가뿐하다. 세수를 하려고 하니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 부족은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선 아침산책에 나섰다. 아이들은 물을 길어 오고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느라 분주한 모습이 정겹다. 간 밤에 내린 비 때문에 지면상태가 좋지 않아서 흙이 신발에 뭉쳐 걷기가 쉽지않다. 호텔로 돌아오니 물이 조금씩 나와서 간신히 세수만 할 수 있었다.

어제 저녁의 식사가 인상적이어서 아침식사도 그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오믈렛, 커피, 빵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는데, 식탁 모양, 수저통이 있는 점, 마당에서 야채 다듬는 모습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국 식당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직원들은 모두 젊은 남자들인데 음식 맛도 좋고 대체로 가격도 저렴한 곳이다.

근처에 교민이 운영하는 사진관이 있어 인사차 들렀는데, 20대 초반의 젊은 훈 씨 혼자서 관리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 곳에서 멀지않은 서부지역의 중심도시인 바푸삼에서 또 다른 가게를 운영 중인데, 최근에 이 가게를 인수해서 훈 씨가 관리를 맡아보고 있다고 한다. 어제 들르지 않아서 조금 섭섭해 하는 것 같았는데, 쉬는 날이라서 문을 열지 않는 줄 알았고 또 신세를 지게 되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지구상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국인이 가있지 않은 곳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카메룬에서 한국인들은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정이 많은 한국인의 심성이 현지인들에게 어느 정도 인간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호텔에서 배낭을 찾아서 사진관에 맡기고 또 다른 박물관 - Musée des Arts et des Traditions - 을 찾아 나섰다. 가는 길에 버스 타는 곳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 주민들이 사는 좁은 골목길을 가로지르고 낮은 언덕을 올라 가는데, 지나가는 주민이 길을 아느냐, 고 친절히 물어주면서 걱정해 준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길을 잃는다 해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박물관에 도착했지만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다. 보통은 8 연다는데 관리인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기다리면 곧 열릴 거라고 한다. 아마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늘어서 있는 공예품 가게를 둘러 보고 있으니까, 현지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다가 담배, 콜라넛Kolanut 등을 권해오기도 한다. 이 곳 사람들은 콜라넛을 즐겨 먹는데, 먹으면 힘이 생기고 특히 정력에 좋다고 믿는 듯했다. 실제로는 카페인 성분을 다량 포함하고 있어서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싸우던 사람끼리 화해의 표시로 콜라넛을 교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약간 깨물어보니 너무 써서 인상을 찡그렸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다시 돌려 주니까 자랑이라도 하듯 베어 문다.

공예품가게 중의 한 군데에서 팔찌 하나와 땅콩 모양의 열쇠고리를 7개 샀다. 모두 수공예품인데, 특히 열쇠고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꼭 진짜 땅콩처럼 보인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쓰여 있는 가격은 자기의 가격이니 내가 생각하는 가격을 제시해 보라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을 서로 가격을 조정해서 양쪽 다 만족하는 가격에 이르면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다. 카메룬 어디에서나, 특히 공예품을 사고 팔 때 통용되는 가격 결정 방식이다.

열시에 박물관에 가니 문이 열려 있다. 전체적으로는 작은 규모이지만 큰 전시실 하나, 작은 전시실 2개에 그런대로 가지런히 그 지역의 유물이 잘 정리되어 있다. 공공기관인데 직원이 운영하는 작은 공예품 가게도 한 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시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여서 어떤 것이 유물이고 상품인지 한순간 혼란스럽다. 입장료로 500세파를 지불했는데 미리 정해져 있는 요금은 아닌 듯 하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앞장서서 안내해 준 소년에게도 100세파를 주었더니 좋아하는 눈치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으니 보상을 받을만하다.

다시 걸어 나와 어제 들렀던 모스크 근처에 있는 "왕의 전쟁 북"을 찾아 보았다. 매우 굵은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북인데, 전쟁 수행 시에 왕이 위에 올라타고 전사들을 독려할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큰 북을 전쟁터에서 어떻게 이동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양쪽에 선 부하들이 아래쪽에 단단한 나무들을 계속 옮겨 일종의 무한궤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머리 속에 어느정도 그림이 그려진다. 관리하는 할아버지와 그 곳까지 안내해 준 장사꾼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도 얼마씩 지불했다. 이제 어느 정도 볼거리는 다 본 셈이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음료수를 한 병 사서 사진관에 전해주고 배낭을 챙겨 나섰다. 음료수는 사실 근무하는 현지인 종업원들을 위한 것이다. 손님이라고 누가 오긴 했는데 국물(?)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어찌 서운해 하지 않겠는가?

 

바푸삼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중앙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더니 버스는 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근처에서 부쉬택시Bush taxi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반 택시와 다르지 않은데, 잘 다니지 않는 시외구간이나 밀림지역을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뒷자리에 4, 앞자리에도 운전사 외에 2명이 타고 보니, 옆구리가 꽉 끼어 결려서 눈물이 나올 지경인데 조금도 몸을 틀 수가 없는 형편이다. 자리가 복잡한 건 같다고 해도 숨 쉴 여지는 있는 승합버스가 그리울 지경이다. 도로는 전 구간이 포장되어 좋은 편인데, 바깥 풍경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푸삼에 도착했다. 한 시간 거리이니 망정이지 그 이상이었다면 아마 질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날씨는 무척 맑다.

우선 호텔을 찾아서 방을 잡았다. 제법 규모 있는 도시라서인지 요금은 비싼 편이다. 하지만 깨끗해 보이고 관리도 잘 되는 편인 것 같다. 짐만 내려 놓고 바로 거리로 나섰다. 외곽으로 걸어가니 수도요금소가 보인다. 그 이후로는 건물도 별로 보이지 않고 배도 고파서, 길 건너편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현지인들이 다소 놀란 듯하면서도 인사를 건넨다.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주문하니까, 익힌 고기와 소스를 곁들이고 옥수수를 갈아 만든 꾸스꾸스가 한 접시 가득하다. 배 고픈 참에 맛있게 먹었더니 더 정겹게 대해주는 것 같다.

배가 부르니까 거리로 나선 발걸음이 더 가볍다.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참 가다 보니 익히 들은 사진관 간판이 보이는데, 훈 씨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교민들이 초기에 카메룬에 정착하면서 제일 많이 시작한 사업이 사진관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외모에 관심이 많고 당시만 해도 무척 신기한 것이어서 돈도 많이 벌었다는데, 요즘은 경기가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인사만 드리고 나오려고 하니, 무척 서운해 하시면서 오늘 떠날 예정이 아니면 저녁때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신다. 하루 종일 일하시느라 피곤하신데 괜히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지금 떠나는 길인데 잠시 들른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한국음식을 구경한지도 까마득하게 느껴져 말씀만으로도 벌써 배가 부른 것 같다.

 

아쉬운 걸음을 뒤로 하고 시내 트랙킹을 계속했다. 작은 규모의 극장이 보이길래 요금을 살펴보니 야운데와 비슷한 수준이다.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구경하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사탕 1봉지, 쵸콜렛 2개도 샀다. 전반적으로 야운데 물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 편의 건어물을 파는 곳에는 가자미처럼 넙적하게 생긴 이름 모르는 생선이 쌓여있다. 카메룬에 온 후로 건어는 처음 보는 터라 사갈까 망설이다가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생존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니 거의 주부가 다 되었다.

순환로를 거쳐서 돌아서니, 잘 정돈된 깨끗한 도로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행정기관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법원, 시청, 아프리카중앙은행 등의 건물을 볼 수 있다. 법정을 들여다보니 작지만 깨끗한 모습이고, 게시판에는 재판 일정이 빽빽이 써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법으로 시비를 가릴 일도 많은 모양이다.

호텔로 오는 도중에 비가 내려 우산을 폈더니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 이 정도 비에 요란스럽게 엄살을 부리냐는 듯하다. 현지인들은 우산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웬만한 비는 그냥 맞는다. 나도 비 맞으며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여행 중이니 각별히 몸을 챙겨야 하는 만큼 어쩔 수 없다. 호텔 앞에서 바나나를 샀다. 6개에 100세파 밖에 하지 않으면서 신선하고 맛있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거울을 보니 그제서야 제법 사람같이 보인다. 이 기분 그대로 저녁을 맛있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호텔에 식당이 있어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거기에 맥주를 추가해서 주문했다. 한국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황제의 찬도 부럽지 않다.

방으로 와서 쉬면서 남은 일정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야운데로 돌아가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 카메룬에 와 있는 것 자체가 여행의 과정이지만, 야운데로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을 일상을 이 순간 만큼은 잊어버려야겠다. 비는 조금씩 계속 내리는데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밖은 바에 켜 놓은 TV 소리, 복도의 사람 소리 등으로 소란스럽다.

 

'[삶-食] > 새우의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팡으로 - 2  (0) 2008.07.10
2000년 9월 5일(화) : 바팡으로  (0) 2008.07.10
품반으로 - 2  (0) 2008.07.10
2000년 9월 3일(일) : 품반으로 - 1  (0) 2008.07.10
쿰보로 - 2  (0)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