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팡에 도착했다. 걸어서 도시를 둘러봐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날씨가 맑은 것이 마음에 든다. 미리 생각해 둔 숙소를 물어보았더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택시를 잡아서 찾다가 결국 도착한 곳은 사마리아인(Le Samaritain)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누가복음인가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로 성경에서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이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기대했던 대로 주인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요금을 1,000세파나 깎아 주었다. 게다가 영수증까지 발급해 주는 곳은 이 곳이 처음이다. 역시 사마리아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전체에 제한송전을 하고있어서 오후 서너 시가 되어야 전기가 공급된다고 한다. 이 곳은 야운데보다 전력사정이 더 안 좋지 않은 것 같다. 야운데도 수시로 정전이 되지만 아직 제한송전을 할 정도는 아니다. 새 건물은 아니지만 대체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방 안에는 슬리퍼와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양치질용 컵도 준비되어 있다.
잠시 쉬다가 거리에 나서니 여자 걸인이 먼저 반긴다. 동전 하나를 건네니까 너무 고마워해서 오히려 손이 부끄럽다. 작은 규모의 종합경기장에서는 조그만 아이들이 씩씩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길가에 내놓은 축구경기 놀이기구에 아이들이 소복이 모여있다. 역시 축구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사랑은 열성적이다. 작은 크기의 나이트클럽도 많이 눈에 띈다. 길에서도 음악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내를 약간 벗어나니까 이내 한적한 시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두알라로 가는 듯 싶은 버스의 지붕에 염소가 묶여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염소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것조차도 소박한 풍경으로 정겹게 다가온다. 저녁 무렵에 하루 일을 마치고 머리에, 등에 나뭇단을 지고 돌아오는 사람들 - 주로 여자들과 아이들 - 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 하다.
바팡의 쉐페리는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머뭇거리면서 입구에 들어서니, 어디에선가 몇 사람의 남자가 나타나서는 신성한 곳이니까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누군가 안내해 주러 나오기 전까지는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두알라왕궁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누가 온 것을 알고 마중 나올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반응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근처 주민들이고, 결국은 아무도 마중 나와주지 않았고 날도 저물어서 안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밖에서 보기에 건물 형태가 바푸삼의 그것과 비슷하게 보인다.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 전면에 작은 돌 기둥 두 개가 서 있는데, 혹시 우리나라의 비석이나 벅수같은 것일까 하고 보니 새겨진 글씨나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세워놓은 것이 틀림없으니까 나름대로의 상징을 지니고 있을 텐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은 없고 그냥 세워 놓은 것이라고만 한다.
그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도시 이름들 앞에 붙은 "Ba-"는 “~의 사람들" 또는 “~에 사는 사람들”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팡Ba-fang은 팡의 사람들 혹은 팡에 사는 사람들로 해석되는데, 바문Ba-moun, 반소Ba-nso, 반준Ba-ndjoun, 바푸삼Ba-foussam 등도 마찬가지로 풀어 볼 수 있다. 원래 반준을 근거지로 했던 바밀레케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처음에는 그 지역의 동족을 지칭하던 용어가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크게는 바밀레케족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 나름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므로, 그들만의 지파로 갈라진 것이 오늘날 카메룬에 200여 종족이 보고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각 성씨를 본관별, 파별로 세분하면 그 정도 아니 그 이상까지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질문에 답해주었으니 1,000세파를 내놓으라고 한다. 여행 중이라 돈은 없고 사탕은 줄 수 있다고 말하며 하나씩 건네주니까,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재미있어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순박함으로 내 마음도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너무 멀리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호텔 근처까지 왔다. 아이들이 수숫대와 풀잎을 이용해서 바람개비를 만들어 놀고있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내가 가지고 놀던 것 그대로이다. 아이들의 얼굴이 어릴 때 나와 뛰놀던 동무들의 얼굴과 겹쳐지고, 골목길도 예전 우리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듯 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동네 아이들이 많이 모여서 어느 집의 창문을 통해서 TV를 보고 있다. 내가 근처 의자에 앉으니까 그 중에 반 정도는 TV 대신 나를 보고 있다가, 용기를 낸 듯 다가와서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호텔에 잠시 들렀다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구운 닭요리에 밥,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카메룬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닭요리이니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물론 시장이 반찬인 것도 두말할 나위 없겠다.
방에 돌아와서 씻고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한없이 편안해진 마음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생각하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실상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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