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1년 6월 21일(목) : 륌시키에서

그러한 2008. 7. 12. 12:58

 

2001 6 21() : 륌시키에서

 

- 경비 10,500세파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간단히 짐을 챙겼다. 오늘은 하루 종일 들과 산을 걸어야 하는 만큼, 아침식사도 든든히 했다. 근처 가게에서 700세파를 주고 생수도 하나 샀다. 관광지라서인지, 아니면 국경근처여서 물자공급이 쉽지않아서인지 물건값은 대체로 야운데의 2배이다. 7 섭외해준 가이드와 트랙킹에 나섰다.

륌시키라는 지명은 이 곳 말로 산을 뜻하는 Rhum, 이 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Siki가 합해진 것이라고 한다. 밭으로 개간되어있는 마을 길을 지나서 산등성이를 올라서니, 작은 돌로 둥글게 만들어 놓은 여러 기의 무덤이 보인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이지리아 마을에서 이 곳으로 시집온 여인들이나 이주해 온 사람들의 무덤이다.

두 나라 간에 사이가 좋지않을 때가 많아서, 살아서는 지척에 두고서도 가 보지 못했지만 죽어서나마 매일 고향을 볼 수 있는 곳에 매장하는 풍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결혼제도를 통해서 여자들을 서로 교환하는 기제는 유지되고 있고, 꼭 이 곳이 아니더라도 여자들은 죽어서 흔히 이러한 형태의 무덤에 묻힌다고 한다. 건너편 나이지리아 마을과는 국경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으며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었다.

산등성이에 앉아서 아래쪽 경치를 굽어보는 맛이 제법 좋다. 사냥꾼의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외따로 서있는 것이 보인다. 그 전에는 이 곳 사람들도 사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냥을 해서 생계를 잇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냥할 때는 독을 묻힌 화살을 이용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바위 사이로 뱀이 보인다. 도망가고 있는 어린 뱀을 기어이 쫓아가서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을 보니 뱀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잠시 쉬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곳에 이르렀는데,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이루는 곳이라고 한다. 철조망도, 군인도, 팻말도, 그 어떤 선도 그어져 있지 않다. 몇 걸음이지만 나이지리아 땅도 밟아보았다.

계곡쪽으로 내려와서 보니까 자투리 땅도 개간해서 밭을 일구어 놓았다. 잠시 앉아서 쉬고 있으니, 당나귀 두 마리에 쟁기를 묶어서 밭을 갈고있는 아이가 보이고 또 다른 아이는 개 두 마리를 이용해서 소를 몰고 지나간다. 목가적인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 마음이 평화로워짐을 느낀다.

조금 더 걸어가니까, 한 남자가 밭을 지키면서 나무 조각을 만들고 있다. 가이드와는 잘 아는 사이인 듯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여인들이 많은데, 위는 완전히 드러낸 채 민요인 듯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워가며 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움막으로 안내하길래 들어가보니 기타처럼 생긴 작은 전통현악기를 주로 만드는 사람의 집이다. 보통은 시장에 내다파는데 관광객은 직접 살 수도 있다고 한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어온 것은 아닌 듯 싶다. 다른 조각품도 만든다고 하는데, 이곳의 초기 정착인인 Siki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도 여럿 보인다.

집의 외형은 전형적인 현지가옥인데 흙바닥에서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 작은 규모지만 여러 개가 붙어 있고, 우리에는 염소도 몇 마리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경제적으로 제법 여유가 있어 보인다. 4명의 아이들이 바가지에 죽 같은 것을 담아서 나눠먹고 있는데, 마음대로 다니고 있는 닭이 기회를 엿보다가 한 번씩 쪼아 먹는 광경이 재미있다.

다시 산으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서, 제일 가파른 암벽 봉우리인 쿱시키Kupsiki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낮은 등성이에 올라섰다. 숨이 차서 한참 동안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봉우리 아래쪽에서는 무엇을 채집이라도 하는지,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먼 거리에서나마 어렴풋이 보인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까 어제 차를 타고 들어온 도로가 나온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벌써 다 둘러 본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가이드는 어느새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난 길을 따라 부지런히 가고 있다. 물론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마을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에서 그 이상의 무엇을 분명히 느낄 수 있어서 흐뭇하다.

지금까지 본 풍경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평지가 계속 이어지고 대부분의 땅을 밭으로 일구어 놓았다. 마치 도로를 경계로 해서 서로 다른 지역인 것 같다. 작은 개울이 흐르는 나무 아래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숙소에서 싸 준 도시락에는 빵, 고기, 과일 등이 제법 정갈하게 담겨져 있다. 가이드와 나누어서 먹으니까 양은 적어도 더 맛있는 것 같다. 덤불로 가려진 근처의 밭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간간이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 시간을 그늘에서 쉬다가 다시 걸으려니 햇볕이 따갑다. 길이 험한 것은 아니지만 땀을 식히려고 자주 쉬게 된다. 두 시간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서는 참인데, 가이드는 화장실이라도 급한지 근처에 보이는 집으로 달려갔다가 잠시 후 돌아온다. 아이들이 농사일을 많이 돕고있는 것이 보여서 물어보니, 이 곳에는 극소수의 아이들만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6년간의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무시할 수 없고, 부모들이 교육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주된 이유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4 조금 지나서 숙소에 돌아왔다. 가이드와 시원한 맥주 한 병씩을 마시고 나니 그제서야 갈증이 좀 가신다. 샤워를 하고 나니 벌써 6다. 밥 먹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서 마을산책에 나섰다.

골목으로 접어드니 공동으로 이용하는 우물이 보인다. 일본 어느 단체에서 조성해 준 것이라는데, 기술자가 수시로 점검하러 온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다. 가지고 간 생수병에 채워서 보니 물이 깨끗하다.

마을 입구에는 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그 아래 평평한 바위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앉아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그 옆에는 이 곳에서 가장 큰 호텔이 근사한 모습으로 서 있다. 언뜻 동양인을 본 것 같은데 일본사람 몇 명이 묵고 있다고 한다. 우물기술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와서 식사를 하고 숙박료도 미리 지불했다. 이틀 밤에 7,000세파이니 무척 저렴한 것이다. 담아 온 우물물로 양치질을 하니 입안이 상쾌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다가 10시쯤에 잠이 들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