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슬픔, 죽음에 대한 탐구(1)
(문): 우리의 일생은 시간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어갑니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상처와 고통을 만들어가기도 하고요. 시간이 슬픔을 낳고, 죽음과 닿아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삶의 깊은 슬픔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지두선사): 삶의 모든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아주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 슬픔, 그리고 죽음이다. 시간을 이해하고, 슬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며,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것들 모두 맑고, 투명한 사랑을 요구한다.
사랑은 이론도 아니고 이상도 아니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과목을 수강할 수도 없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될 때까지 매일 연습해 볼 방법도 없다.
하지만 시간의 의미와 바닥을 알 수없는 깊은 슬픔, 琉??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순수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고 편하게 의식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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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시간을 이해하면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고, 또 슬픔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슬픔이나 죽음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기고 따로 떼어서 다루려 한다면 단편적으로밖에는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사랑이 지닌 놀라운 아름다움과 생명력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시간을 추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실제로서 다뤄보려고 한다. 지속되는 기간이며 존재의 연속성인 시간을 말이다. 수백만 년 동안 연대순으로 이어져오는 시간이 있다.
시간은 마음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마음과 더불어 움직인다. 마음은 연속성을 가진 존재인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이며, 진행이라고 불리는 그 연속성을 통해 마음을 완성해가고 다듬어간다. 또한 시간은 생각이 뭔가를 성취하고 무엇이 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시간은 훨씬 더 큰 뭔가를 향해 가기위한 디딤돌이다. 어떤 능력을 키우고 특별한 기술을 습득하는 따위의, 훌륭하건 훌륭하지 않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모든 괴로움을 넘어선 저 쪽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간이란 현재의 순간과 미래의 어느 순간 사이에 지속되는 간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격을 기르고 나쁜 습관을 없애고 근육이나 외모를 가꾸는 데에 시간을 사용한다.
이 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마음은 구세주와 지옥과 천국의 존재를 믿도록 훈련받았다. 동양에서는 그와 비슷한 마음이 서양보다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만들어져 왔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은 짐이 되고, 실제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는 데에 장벽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한다. '내일 아니면 2년 안에 나는 이 일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될거야.'라고.
시간을 인정한 순간 우리는 나태를, 즉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즉각적으로 보지 못하게 막는 그ㅡ 특유의 게으름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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