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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슬픔, 죽음에 대한 탐구(5)

그러한 2008. 7. 31. 14:27

 

시간, 슬픔, 죽음에 대한 탐구(5)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며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죽음을 다루기 위해 그것을 빙둘러 가는 방법을 많이도 만들어냈다. 죽음을 숭배하기, 죽음을 부정하기, 셀 수도 없이 많은 신앙에 매달리기 등등.
그러나 죽음으 이해하려면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그대는 사람들이 죽는 걸 본 적이 있을 테고, 또 나이가 들어 늙고 몸이 쇠약해져 가는 걸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나 사고를 당해서, 질병으로, 살해당하거나 혹은 자살로 인해 육체적인 삶이 끝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섹스나 배고픔, 잔혹한 행위,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모른다. 죽는다는 게 뭔지,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죽음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정말 모른다.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 즉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죽음에 가득 차 있는 것 즉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실이 아니라 생각을 두려워하며, 마음은 사실을 모른다.

제발 이것을 나와 함께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만일 그대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죽음을 두려워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죽음이 찾아올 순간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서 그동안 걱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많다. 그대는 걱정거리들과 소망하는 것들, 지금가지 쌓아온 지식들을 모두 다음 생으로(다음 생이 있다면) 가져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불멸의 형상을 믿기도 한다. 그대에게 죽음이란 삶과 분리된 그 무엇이다. 죽음이 저 건너편에 있는 동안 그대는 이 쪽에서 생활하느라고 바쁘다. 차를 운전하고, 사랑을 나누고, 시장기를 느끼고, 걱정하고, 회사에 출근하고, 지식을 축적하는등등.

그대는 죽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책을 아직 다 못 썼거나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삶에서 떼어놓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삶을 이해할 거야. 그러고 나면 곧 죽음도 이해하게 되겠지.'

그러나 그 둘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둘 가운데 하나를 고립시킬 수없고 따로 떼어서 이해하려고 애써도 안된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우리는 삶을 완전히 고립되고 물샐틈 없이 꽉 막힌 격리실에다 갈라놓는다. 그대가 경제 학자라면 경제학에만 관심 있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또 이비인후과 의사라면 40년 동안 그렇게 제한된 분야의 지식 속에서 살테고, 죽을 때까지 그것이 그대의 천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