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슬픔, 죽음에 대한 탐구(6)
삶을 단편적으로 다루다 보면 끊임 없이 반복되는 혼란과 모순과 불행 속에서 살게 된다. 삶의 전체성을 보아야 하며, 애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야만 삶의 전체성을 볼 수 있다.
사랑만이 유일한 혁명이다.
수학, 의학, 역사,경제학에 대한 지식을 점점 더 많이 습득해서 그 단편적인 지식들을 한데 모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하면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랑이 없으면, 혁명은 단지 국가에 대한 숭배나 어떤 이미지에 대한 숭배 또는 무수히 많은 포악한 부패정치, 인간에 대한 파괴로 이끌 뿐이다. 마찬가지로 두려운 마음에 죽음을 저 만큼 떨어진 곳에 놓아두고 그것을 일상 생활로부터 떼어놓으면, 그 분리는 더 큰 두려움과 더 큰 불안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복잡한 이론들만 키울 뿐이다.
죽음을 이해하려면 삶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나 삶은 생각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을 키운 것이 바로 연속성이다.
그러면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는 죽음을 바로 옆으로가져올 수 있을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사실 죽음은 어딘가 멀리 떨어져 있는게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있다. 죽음은 그대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재미있게 즐기고 있을 때, 귀기울여 듣고 있을 때, 회사에 가고 있을 때 바로 거기에 있다. 죽음은 삶의 매 순간 여기 있다. 일단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그대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가족을 잃을까 봐, 친구도 없이 홀로 남겨질까봐 두려워한다.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두렵고, 모아둔 경험과 재산이 없어질까봐 두렵다. 우리가 겁나서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은 기억이며, 마음은 그 기억에 집착한다. 그러나 기억은 단지 기계적인 것일 뿐이다. 컴퓨터가 그걸 아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죽음의 아름다움과 죽음의 놀라운 본질을 이해하려면,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는 것이 사라져야 그 안에서 죽음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그 때 마음이 신선해지고 새로워지기 때문이며 그러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런 다음에 죽음이라 불리는 그 상태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가지 삶과 죽음은 하나다.
현명한 사람은 시간과 생각 그리고 슬픔을 이해하며, 오직 그런 사람만이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 매 순간 죽어가고, 경험을 쌓아 두거나 모아 두지 않는 마음은 순결하며 따라서 변함 없는 사랑의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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