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ation into Insight, edited by Pupul Jayakar and Sunanda Patwardhan, p 77(Gollancz & Row, 1979)
통찰로의 여행, 푸펄 자야카와 수난다 패트와던, 페이지 77(골란 & 로우 출판사, 1979)
We are seeing the fact, the 'what is', which is suffering.
우리는 고통 자체인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That is an absolute fact.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I suffer and the mind is doing everything it can to run away from it.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그 마음은 사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When it does not run away then it observes.
만약 그 마음이 도망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관찰하는 겁니다.
Then the observer, if it observes very very closely, is the observed, and that very pain is transformed into passion, which is compassion.
관찰하는 주체가, 만약 매우 매우 근접해서 관찰한다면, 그땐 관찰당하는 객체가 됩니다. 주객이 일치할 경우 그 고통이란 놈은 열정으로 변형되고, 그 열정이란게 바로 자비와 다르지 않아요.
The words are not reality.
말은 실재하는 사실과는 다르답니다.
So, don't escape from suffering, which does not mean you become morbid.
따라서, 고통에서 도망치지 마세요, 도망치지 않는다는 게 고통속에 있어라는 게 아니에요.
Live with it.
그 고통의 사실과 함께 사세요.
You live with pleasure, don't you
여러 분들은 쾌락과 함께 사는 것은 좋아하잖아요
Why don't you live with suffering completely
왜 고통과는 완전히 함께 살지 않나요
Can you live with it in the sense of not escaping from it
고통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고통과 함께 살 수 있나요
What takes place
자, 그럼 무슨 일이 생깁니까
Watch.
지켜 보십시요.
The mind is very clear, sharp.
그 마음은 매우 명확하고, 날카롭습니다.
It is faced with the fact.
그 마음은 사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The very suffering transformed into passion is enormous.
열정으로 변형된 그 고통이란게 정말 엄청난 겁니다.
From that arises a mind that can never be hurt.
거기로부터 상처받을 수 없는 마음이 탄생합니다.
Full stop.
마음이 고통앞에서 완전히 멈추어야 합니다.
That is the secret.
이게 바로 비결아닌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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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2호'님이 게시판에다가 '불만족'에대한 글을 올려달라시는 주문 때문에
오랫만에 '영한 대역 번역' 코너를 읽다가 참으로 멋진 글을 발견했습니다.
고통에서 도망치지 마세요, 도망치지 않는다는 게 고통 속에 있어라는 게 아니에요.
라는 글귀 말예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 사실과 함께 남아 있어라...라는 말을 수 없이 들으면서도
그 말의 참 뜻을 사실 잘 모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 '고통 속에 있다' 라는 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통의 사실과 함께 있으라고 말씀하시네요.
왜 일까요
간단한 문제죠. 고통은 그 자체는 사실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고통라는 마음(생각)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고통이라는 사실과 함께 있는 것의 차이.
그 차이는 후반부에 드러나죠.
전자는 고통에대한 일종의 '방치'입니다.
그래서 계속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겁니다.
요 밑 상우님의 꼬릿말에서처럼
음울하게 병자처럼 고통 속에 있는 것은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각도로는 이미 도망 친거죠.
자신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방법으로 고통이라는 사실에서 도망친 거니까요.
자신을 고통 속에 방치 하지도, 도망가지도, 억누르지도 않을 때
후자는 고통이 이미 열정으로 '변형, 변혁, 변이'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그 쏟아지는 물은 이미 멈춰버린 겁니다.
고통이.....욕구가.....생각이.... 멈춰버린 거죠.
열정으로 변형되어 버린 겁니다.
거기서부터 결코 상처받을 수 없는 마음 이 태어나게 된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그것이 전에 어느 글에서도 말씀하셨던 치유적인 성질을 가진 따뜻함,
즉 사랑을 말씀하시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통이라는 사실을 대면하다는 그 것 자체가
이미 그 고통이라는 것에대한 치유적인 성질을 가진 따뜻함이라는 거죠.
그러니, 거꾸로
상처 받을 수 없는 마음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라는 사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사실' 과 있는다는 문제에대해서는
언제나 참구하고 참구해도 부족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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